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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Mar 27. 2021

혁신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보통의 교사가 혁신학교에 발령났다.

  처음 혁신학교가 등장했을 때, 혁신학교에서 행해진다는 여러 교육활동 이야기와 함께 들려왔던 말은 <예산지원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보통의 학교보다 더 많은 예산을 주기에 그 돈으로 업무 인력을 고용하거나 체험활동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가는데 돈이 간다고, 돈 많으면 할 수 있는 교육활동의 범위가 대폭 늘어난다. 체험활동을 떠나도 학생들에게 각출하면 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생기지만, 예산 사용을 논외로 놓는다면 부담이 확 줄어든다. 우리 반에서 쓸 수 있는 예산이 대폭 늘어난다면 특이한 미술 활동 재료도 사보고, 공정 무역 제품들도 구입해보고, 문집도 만들고 등등 잠깐 생각해도 떠오르는 활동들이 많다. 하물며 봉사활동을 해도 돈이 드니 예산이 많다는 혁신학교가 부럽기도 했다.




  보통의 학교에도 혁신학교에서 시도했던 여러 아이디어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신발주머니 없는 학교, 9시 등교, 쉬는 시간 10분 대신 중간놀이 시간 20분 운영은 모두 혁신학교의 결과다. 그 중 나에게 가장 멋진 아이디어는 약 2년전부터 시작된 혁신학급 예산 지원이었다. 꿈꾸는 교육활동이 있다면 계획서 내고 신청해라, 혁신학교처럼 예산을 지원해주마 라는게 요지였다. 비용지원도 학급당 80~150만원 정도 되니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다. 경력이 오래된 선생님들은 예산을 지원해준만큼 형식적인 절차로 힘들게 하는거 아니냐며 우려도 표했지만, 막상 한해 경험하고 나면 덕분에 특별한 경험을 했다며 좋아하셨다.


혁신의 힘은 돈에서 나왔다.




  하지만 막상 혁신학교에 와보니 왠걸, 돈이 없다. 이전에 내가 이용했던 혁신학급 예산 지원처럼 혁신 예산이라는 분류가 존재하지만 파이를 전교생이 나누고 나니 학급당 40만원정도다. 치밀하게 고민해서 핵심활동만 뽑는다면 아주 적은 돈은 아니다. 보통의 학교, 혁신학급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그 마저의 예산도 없으니까. 무엇을 선택할까 교육내용의 경중을 고민하고 있는데, 절기교육으로 진달래떡을 만들자고 제안하신 선생님이 산에 진달래를 따러 가신단다.  


"봄 절기교육으로 화전 만들면 좋은데 식용꽃은 너무 비싸요~ 산에 가서 진달래를 따오려고해요"


음? 식용꽃의 예산을 넘었으니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수를 내셨다. 식용 허가를 받지 않은 꽃을 아이들이 먹는 활동 재료로 써도 되나 문제는 제쳐놓고서도 돌파구를 찾는 행위 자체가 신선했다. 예산을 풍부하게 써왔더니 나의 사고 반경이 예산이라는 틀에 갇혀있었나보다. 모순이다.



혁신의 힘은 결국 교사다.


  혁신의 힘은 결국 교사로부터 나온다. 유명세가 있든 없든, 인기가 있든 없든 내가 만난 모든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수업을 할까 고민하셨다. 어떤 반은 교실이 단정해서 학습분위기가 어수선하지 않고, 어떤 반은 아이들이 작품이 매번 그림처럼 게시된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선생님반은 아이들도 나긋나긋하게 말하고, 괄괄하게 휘어잡는 선생님의 학급은 아이들도 힘차다. 학부모와 학생에게 어필되는 지점은 다를 수 있지만, 단언컨데 특별한 교사와 시시한 교사로 나눌 수는 없다. 아이들은 모두에게 배운다.

학교 화단에서 토끼가 풀을 뜯는다. 여긴 서울 도심




혁신학교의 선생님들이 보통의 학교보다 더 열정적이고 혁신적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의 학교에서는 안전사고나 질서의 문제로 시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승인이 난다. 아이들의 교육활동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교문 밖 놀이터도 나갈 수 있고, 인근 하천도 갈 수 있단다. 조심스레 "혹시 코로나만 아니면 여름에 운동장에서 물총놀이를 해도 될까요?" 물으니 당연히 할 수 있고, 예전에는 운동장에 아예 물놀이장이 있었다는 놀라운 답변도 한다. 보통의 학교에서는 안전 사고 우려로 상상은 해도 감히 시행할 수 없는 일이다. 혁신학교의 선생님은 안전사고를 막는 초능력이 있는걸까.


  다른 사람이 시도하지 않은 무언가를 할 때는 데이터가 충분치 않다. 졸업식 때 헬륨 풍선을 나눠주는 것에도 안전 사고가 우려되어서 밤새 검색 후 시도하지 못한 나다. 교감과 교장같은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매뉴얼대로 하면 매뉴얼이 안전장치가 되어주지만, 교육과정 이외에 새로운 것을 하는 건 오롯이 학교 몫이고 교사의 몫이다. 안전 사고가 나면 당연히 관리자와 해당 시도를 한 교사의 몫이니 그 무게가 버겁다. 안전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혁신학교가 보통의 학교가 다른 건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혁신학교는 결정 권한이 관리자에게 있지 않고 “다모임”이라는 교사 회의기구에 있다. 덕분에 관리자가 “내가 책임질테니 시도하세요!”가 아닌 교사가 제안하고, 교사끼리 논의하고 교사끼리 결정을 내린다. 당연히 결정의 책임도 분산이 되고, 해보자!라고 의견이 모이면 주인 의식으로 뭉치게 된다. 또, <혁신>이라는 명칭은 남과 다른 무언가를 해보자는 데 당위도 제공한다. ‘혁신학교인데 이 정도 새로운 건 해봐야 하는거 아닌가요?’ 라는 생각이 선생님들 무의식 저변에 깔리면서 보수적인 교육활동 운영 그 이상의 결정들이 나오는 것 같다.



여긴 왜 틀이 없지?

관리자들에게 허락이 나는건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모든 질문들을 뒤로하고 혁신학교 3주차, 신나게 굴기로 했다. 하고 싶던 거 다 해보자.

돈은 좀 더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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