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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Feb 25. 2023

편지 #1

끝도 없이 침잠하는 어느 겨울의 끝이었습니다.

매섭게 불어오던 바람은 서둘러 봄을 닮아가는데

봄기운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좁아진 마음은

아직 지난 계절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은 잔뜩 머금은 하루는 아무리 꼭 짜내도

다시 묵직한 슬픔을 삼키며 긴 긴 잠으로

어둑한 방 안 먼지 쌓인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려

가늘고 느린 숨을 조용히 뱉을 뿐.


슬픔이 가득 찰수록 입은 무겁게 닫히고

마음은 자꾸만 안으로 곱아들어 숨는다는 것도

볕이 가득한 날에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괜찮았던 어느 날의 기억이

한 줄기 빛처럼 내려앉은 곳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청량하게 정적을 깨트릴 때

주고받는 말 끝에 담긴 다정함이

옷자락 끝에 슬며시 붙어 따라옵니다.


위로라는 것은 어쩌면

끝없이 아래로 낙하하는 마음을

위로, 건져내는 마법의 주문일지도 모릅니다.


부디 내일은 창으로 해가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당신의 방 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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