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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ghteoff Dec 25. 2020

엄마 말도 안 듣는데 기계 말을 들을 리가

스마트폰이 까발리는 나의 엉망진창 라이프

'어제는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네요. 밤늦게까지 일하는 게 아니라면 더 일찍 잠에 들어 피로를 줄여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긁어대다간 다음 달의 나에게 멱살 잡힐지도 몰라요. 이번 달 월 지출액이 과거 3개월 평균 지출액의...'
'지난 7일 동안 활동이 적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활동량을 늘려 보세요.'


내가 스마트폰으로 받는 진단이다. 수면 시간, 활동량, 지출 등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기록되고 있다. 목표한 대로 잘 행하면 칭찬을 해주고, 못하면 팩트 폭행을 날린다. 위의 충고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당연히 칭찬보다 팩폭을 더 많이 당한다. 역시 사람은 속여도 기계는 못 속인다. 특히 나는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들고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찾는 중증 인간이라, 수면 시간은 무엇보다 정확하게 분단위로 기록되는 편이다. '아차, 일어나자마자 씻고 밥 먹느라 수면 시간이 더 길게 측정됐네!' 뭐 이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내가 스마트폰을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이 나를 본다. 내 삶을 지켜보다가 그에 맞는 충고를 해준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엄마의 잔소리가 익숙한 나는, 스마트폰이 건네는 잔소리가 때론 정겹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는 학창 시절 그려오지 않았던가? 아침마다 로봇이 나를 깨워주고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는 세상을. 몇 월 며칠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무튼 1년에 한 번은 있었던 '과학의 날', 도화지에 과학상상화를 그리며 30년 후 미래 모습은 어떨까? 하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쳤더랬다. '1 가정 1 로봇'은 기본이라며 앞치마를 하고 먼지떨이를 든 철제 로봇을 그리는 건 그야말로 국룰이었지. 오늘날로 넘어오자면 스마트폰과 로봇청소기, 인공지능 AI가 있으니 그 옛날 물감 먹은 그림이 아예 없는 얘기라고 할 순 없겠다.


항간에는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아진 현대인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나 역시 화장실에 갈 때도 핸드폰을 챙기는 중증 인간으로서 가끔 나 자신이 걱정될 때가 있다. 본드칠만 안 했지, 그냥 손에 핸드폰이 붙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말하자면 또 다른 나? '물아일체'가 아니라 '폰아일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스마트폰에 너무나 의존한 나머지 주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우려도 이해가 된다. 먼 미래에는 인간의 뇌를 읽고 조종하는 스마트 기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로봇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영화 소재처럼. 물론 손바닥만 한 핸드폰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거나 집채만큼 커져서 인정사정없이 깔아뭉개지는 않겠지만.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상상이 떠올라 당황스럽다. 이 글의 정체성도 덩달아 사라지는 것 같고...


하지만 그런 걱정도 어쩌면 기우일지 모른다. 내 경우가 그렇다. 비록 스마트폰에게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지만, 어쩐지 그것이 나를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진단은 받아도 그의 충고는 별로 들어먹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든 기계든 잔소리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탓이다. 이대로 살면 미래의 나에게 멱살이 잡힌다는 둥, 휴대전화 대신 사랑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는 둥 아무리 스마트폰이 목 아프게 말해도 나는 여전히 엉망진창 라이프를 유지하고 있다. 밤늦게 잠드는 것도 여전하고 돈도 생각 없이 써재낀다. 활동량도 영 늘지 않으며 식사도 내키는 대로 한다. 알림 창에 기록된 목표 걸음 수 반의 반도 못 되는 숫자를 마주하면 반성할 마음이 들긴 하는데, 또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다.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딱딱한 메시지라서 그런 걸까? 만약 엄마의 잔소리가 녹음되어 목표를 못 채울 때 저절로 송출된다면 보다 나아질까? 하지만 그런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나는 얼른 음소거를 하겠지. 엄마 미안.


그래도 변명거리는 있다. '이 시국' 따위 모르는 냉정한 기계 녀석은 내가 밖에 안 나가는 게 아니고 못 나가는 것도 모르고 목표량 좀 채우라고 재촉하니 때론 야속하기도 하다. 심지어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시국과 상관없이 나가면 손해다. 건강도 손해고 아무튼 그냥 안 된다. 지난주 바깥공기 좀 쐬러 집 앞에 나갔다가 얼어붙기 직전에 복귀한 이후론 '산책'이라는 가벼운 이유로는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차디찬 바깥세상으로 발을 내딛으려면 좀 더 중대한 사유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나가고 싶지만 나가지 못하고, 활동량이 적어져 피곤이라곤 모르는 쌩쌩한 정신으로 새벽까지 노는 나를 좀 헤아려줬으면 좋겠다. 온통 배달음식으로 점철된 지출 내역 또한. 결국 모두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건방진 기계 녀석.


엄마 말도 안 듣는데 기계 말을 들을 리 없는 내가 주인인 것도 모른 채, 오늘도 나의 스마트폰은 열심히 나의 빈약한 걸음 수를 측정하며 이 인간이 대체 언제 잠들지를 기다리고 있다. 냉정하고 건방지다고 했지만 나는 이 친구 없이는 못 살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전하고 싶다. 되도록 고장 나지 말고. 오래 해 먹어요, 우리. 아무래도 조만간 예쁜 새 케이스와 그립톡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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