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을 안다. 그가 창조주이며 우리를 천국과 지옥에 떨어뜨릴 수 있는, 무소부지 하신 분임을 안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지옥불에 떨어질 귀신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약2:19)
나는 신을 아나, 믿지는 않으며 의지할 수도 없다. 그는 늘 침묵하며 그 침묵에 내게 주는 건 바닥조차 없는 좌절과 불안 뿐이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생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꺼트리기 위해서는 '내가 나서는 것' 이상의 다른 도리가 없다. 내가 나서서, 하다못해 자기연민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이다.
알지만 믿지 않는 자. 이런 내게 주어진 최고의 형벌은 삶과 죽음 모두 피할 수 없는 지옥이라는 것이다. 삶이라는 지옥을 벗어나고자 스스로 생을 끊기엔 사후의 영벌이 무섭다. 꾸역꾸역 살다가 죽는다 해도, 나의 앎은 귀신의 그것과 같으니 신이 자비를 베풀지 않는 이상 지옥에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아. 내가 애초에 당신을 몰랐다면 육신의 삶이나마 멋대로 향유해 볼 수 있었을 걸. 내가 단순하고 우직한 성정을 타고나, 당신을 아는 것을 넘어 믿음까지 가질 수 있었더라면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 고립무원의 상태에 이르렀을까. 당신은 어쩌자고 수많은 인간 중 나와 같은 오도 가도 못 하는 사람을 만들었는지. 내가 아는 당신은 그 정도로 무정한 신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이 또한 신에 대한 오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단 말인가.
결국 비난과 질책의 화살은 보이지도 않는 신에게, 허공에서 파할 메아리로 내려꽂힌다. 어디까지나 내가 부족한 탓이다. 그러나 한 번도 채워지지 못한 사람은 충족됨을 알 수 없는 법. 나는 신을 믿은 십여년 동안 단 한순간도 채워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자문하고, 자조하고, 자중하는 득도 실도 없는 원형 트랙을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린다.
내 앎의 댓가는 처절한 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