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 차는 절대 바뀌지 않지
누구에게나 처음은 언제나 흥분되고 생생한 기억일 것이다.
첫사랑
첫 키스
첫 경험(experience)
그리고 첫 차.
이 이야기는 나의 첫 차였던 '니로'의 이야기다.
2017년 11월, 내 나이 25살 첫 차가 생겼다.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녔다. 무엇보다 오로지 나의 힘으로 샀던 차였기에 친구가 타고 다니는 엄카(엄마 차) 벤츠 따윈 전혀 부럽지 않았다.
게다가 벤츠 못지않은 하차감도 느낄 수 있었다. 하차감이 꼭 벤츠 비엠이어야만 느낄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샀다는 자부심과 20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새 차'를 샀다는 점, 존재감 넘치는 색깔 등으로 하차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첫 차였던 만큼 과하리만큼 열정적으로 애정을 쏟았다.
4~5일에 한 번은 꼭 세차를, 세차 시 두 번에 한 번은 꼭 고체 왁스 올리기. 주변에서는 "세차하려고 차 샀냐?", "너 몸은 닦냐?"라는 비아냥 섞인 말을 내뱉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차가 더 먼저였던 것 같다.
애정을 차에 더 쏟았기에 당시 만난 여자 친구도 그만 좀 하라며 혼내곤 했다. (가끔 거짓말하고 세차하러 갔다.)
그때 그 친구는 잔소리가 정말 심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천천히 가면 답답하다고 빨리 가라며 성을 내고 반대로 빨리 가면 천천히 가라고 성을 냈다.
그만큼 '화'가 많은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에 가장 '화'가 많았던 그 친구는 가장 인상 깊었던 친구이기도 하다.
나의 첫 차 니로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우리 둘은 그 안에서 많은 추억들을 쌓아갔다.
속초, 강릉, 전주, 부산 등 장거리쯤은 문제없이 니로와 함께 했다. 하이브리드이기 때문에 연비도 좋아 어딜 가든 함께했는데, 딱 1년째에 얼핏 본 주행거리는 무려 3만 킬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일날 밤 출출할 때면 그 친구와 함께 떡볶이를 사들고 한강 둔치로 가, 트렁크에 걸 터 앉아 먹곤 했다.
이윽고 몇 달이 흘렀는지 뜨거웠던 사랑에 금이 갔다. 어떠한 일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둘 중 하나는 한겨울 얼음장 같은 자동차 핸들만큼이나 차갑게 돌아섰다.
그러고 그 친구를 싹 잊은 채 이직도 하고, 다른 사람도 만나고, 하다 보니 어째 자연스레 '첫 차'에 대한 감흥도 차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영롱한 도장 색상은 희미한 잔 먼지들로 인해 칙칙한 파란색으로 변해갔고, 차쟁이들이 금기 시 여기는 자동 세차를 돌려가며 그냥 '이동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한마디로 막 타고 다닐 무렵, 에어백의 맛을 보고 말았다. 내 차 니로에 무릎 에어백이 있었다는 사실도 겪어보고 알았다.
시내 도로에서 버스가 방향 지시등도 없이 내가 달리는 차선 쪽으로 침범했는데, 본능적으로 핸들을 반대쪽으로 튼 것이다.
그대로 멈춰서 있는 차들을 들이받아 모든 에어백이 다 터져버렸다. ‘블랙박스로 본 세상’이 내 눈앞에 직접 펼쳐진 것이다.
생각보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나의 몸보다 잠시 잊었던 나의 '첫 차'와의 헤어짐이 다가올 것만 같은 생각에 울적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울적한 기분은 단순히 자동차라는 비싼 축에 속하는 재화의 가치가 떨어져서, 혹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무언가가 사라져서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행했던 모든 추억들이 사라질 것만 같아서다.
나의 첫 차 니로에는
첫 직장에 취직하여 차를 사겠다는 의지 하나로 월급의 70%를 적금을 들며 고생했던 기억
집에 더 좋고 넓은 차가 있으면서도 굳이 내 차에 욱여 탔던 우리 가족(엄마, 아빠, 동생) 과의 추억
그리고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그녀와의 추억
모든 것들이 묻어 있어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의 가슴속 한켠을 '툭' 하고 쳐버렸다.
사고가 난 니로는 에어백이 다 터져버린 탓에 부품값이 너무 많이 나왔다.
앞 차축은 다 나가버렸고, 전후좌우 어느 하나 성한 곳 없이 깨지고 부서졌다. 다시 살리고 싶었지만, 추후 가중되는 감가와 수리비 탓에 아쉽게도 폐차를 결정했다.
차 안에 있던 짐들을 빼러 가는 길, 마지막으로 마주한 니로는 차축이 망가져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네 바퀴가 띄워져 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글로브 박스, 암레스트 콘솔, 트렁크. 차 내부를 싹 비웠다. 기분이 이상했다. 전 여자 친구와의 사진, 세차장 카드, 처음 갔던 자동차 극장 티켓 등등… 모든 추억들이 뒤섞여 있었다.
가끔, 아니 자주 생각날 것 같다.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나의 발이 되어주고, 퇴근 후에는 노래를 들으며 나만의 안식처로, 겨울만 되면 자주 방전이 되어 애먹었던 모든 기억들이 이제는 모두 추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나갈 새 친구를 입양했다. 하지만 그때만큼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 인생의 첫 차는 언제까지나 바뀌지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