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영 Jun 08. 2021

결국, 이 찬란한 투명으로 우린 자유로워지나

HONNE - free love

I can't get you all that stuff.
But I can give you all my love.
Free love, free love.


햇살이 하염없이 부드러워 달빛이다. 이런 첫여름 오후엔 세상에 단 하나의 가난도 없어. 멋들어지게 우뚝 선 궁궐 같은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이 해오름향香의 보사노바가 우리 것이고, 아담한 호숫가에서 아장거리는 세살배기의 물빛이 연하게 서린 뺨에 키스가 자유로우니까. 펜이 없으니 물 위에라도 끄적이면, 넌 '존 키츠의 환생이네'라며 킬킬 웃는다. 가슴이 아렸어. 내 이름이 아니라 네 이름이 흘러가고 있어서. 그래서 저녁식사를 포기했고 대신 다이어리를 사버렸고 펜을 사기엔 모자라니 연필로 만족했다. 금강석에 새겨도 닳을까 두려운 것을 흑연으로 적어야 하는데, 너는 '둘 다 겨우 탄소일 뿐인걸'하며 제일 싼 다이어리의 무뚝뚝한 초록 민무늬 표지 위로 파란 델피늄 하나 슬며시 올려놓는다. 그러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게요>라는 꽃말마따나 이른 여름이 황홀하게 우리에게 귀속돼. 그래, 우리는 계절에 쓰자, 시간에 새기자. 달뜬 기분은 찢긴 공책 끄트머리에 글로 그림으로 내려앉고, 우리의 내일과 소망이 무지개다리 위로 우렁차게 날아올라. 가슴은 터질 듯 벅차오르고, 아아, 이젠 알아. 유일하게 줄 수 있는 이 사랑마저 보이지 않는 까닭을. 그건 달빛 같은 햇살, 금강석 같은 흑연, 봄 같은 여름과 결이 같으니까. 그렇게, 우린 끝없이 풍요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은 지구와 3.8cm/yr의 속도로 멀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