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마 Nov 28. 2020

Ep.8 호주에서의 첫 썸 아닌 쌈?

어느 나라를 가든 연애는 똑같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숙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연애 아닌 연애를 했었다고 언급했다. 그 썰을 풀어볼까 한다.


호주에서 지내는 동안 썸도 타고 쌈도 타고 연애도 해보며 볼꼴 못볼꼴 다 겪어보았다. 이제와 드는 생각은 이 세상 어딜 가나 사람은 다 똑같다, 싶은 마음이다.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알게 될 국 룰, 아니 월드 룰이랄까. 왜냐하면 사람 사는 것은 결국 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문화와 생활방식이 다르니 사람을 대하는 매너나 관습은 조금 다를지라도 기본적인 남성-여성 으로서의 성향이나 마인드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호주 여자들도 매력 있는 남자, 나쁜 남자 때문에 주야장천 친구들에게 썰을 풀며 하소연하기 바쁘고 우리네 역시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연애사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외국인 남자는 만나본적이 없는 터라 환상을 가지고 있긴 했었다.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매너가 좋다던데.. 한국보다 가정적인 사람이 더 많다던데.. 여자를 우선시하며 스위트 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라던데..'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어디를 가든 남자나 여자는 정말 다 비슷하다. 효리 언니의 유명한 명언처럼 거기서 거기고 그놈이 그놈이다. 






첫 셰어 하우스에서 지내며 한국인들과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인 친구를 만날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유행했던 친구 만들기 웹사이트를 통해 (틴더와 비슷했다) 주변에 사는 호주 친구들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별로였고 잘 안됐었다.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사이트에 다시 들어갔는데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온 것이다. 


‘누구지?’ 


급히 확인해보니 우리 집보다 조금 먼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시안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한국인 친구는 별로 없어서 서로 친구로서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다'하며 남긴 것이다. 이후 그 친구와 여러 날 대화를 나눠보았다. 그는 아시아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또 이야기도 잘 통했다. 결국 나는 직접 한번 만나보기로 했다. 


실제로 만났을 때엔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근처 아시아 식당에 가서 이야기하고 밥을 먹었는데  나로서는 조금 긴장했던 터라 조금 부자연스러운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더 편하게 대해 주었고 긴장하지 말라며 밝은 웃음을 내비쳤다. 


그는 중국, 태국, 인도 등 많은 아시안 친구들이 있고 본인 역시 덴마크 출신인데 어릴 때 이민 온 것이라 했다. 덴마크와 호주의 문화 차이라던가, 본인이 들었던 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문화, 흥미로운 점 등을 같이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었다. 한국에 대해서도 나에게 많이 물어보았는데 사슴 같은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아시아 문화를 많이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으며 여러 인종의 친구들이 많다는 점이 나에겐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 한국에 대해서 정말 궁금해했으며 진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구나, 하는 그의 행동에 낯설면서도 설레는 감정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종종 만나 근처의 이국적인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맛집 탐방을 하였고 나의 서투른 호주 발음을 많이 고쳐 주기도 했으며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워져 있었는데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한 달 정도 데이트를 하고 만났으면 이제 사귀자고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왜 그는 아무 말이 없는 걸까? 싶었다. 


내가 별로였나 생각했는데 만나는 횟수나 그의 행동을 보면 또 그렇지는 않다고 확신했다. 지금이었다면 그는 진지하게 나를 만나는 게 아닌 ‘ getting to know each other(서로를 알아가는 단계)’ 을 빤히 행하고 있었기에 내가 먼저 묻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 그런 걸 몰랐던 나는 어느 날 명랑하게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도 정말 웃겼다. 



‘ Are we just friends or dating as a girlfriend boyfriend thing? ‘ (우리 그냥 친구야 아니면 남자 친구, 여자 친구처럼 데이트하는 거야?)


‘ huh? haha of course.. I like you. That’s why I’m seeing you.’ (뭐? 하하. 당연히 너 좋아하지. 그러니까 널 만나잖아.)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교묘하게 좋아한다는 말로 능구렁이처럼 넘어갔던 것이다. 이를 또 몰랐던 나는 애석하게도 외국에서의 가벼운 'Like'를 한국식 '좋아해'로 크게 받아들인 것이고. 지금이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나를 좋아한다는 말 "Like"가 어찌나 가슴에 박히던지. 외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단계였기에 순진했고 그래서 당했었다.



‘ 아 날 좋아하고 있구나. 그럼 이제 그의 여자 친구구나! ‘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전형적인 순진한(?) 아시안 여자들만 만나고 다니던 나쁜 남자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나에게 종종 시비를 걸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그 사이트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것 아니냐며 '널 믿지 못하겠다. 다신 연락하지 말라' 하는 비상식적인 통보를 했고, 순진했던 나를 패대기쳐 버렸다. 괘씸하면서도 정말 억울하고 며칠 내내 눈물만 나왔다. 속으로 욕이란 욕은 다하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 만들기 사이트에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어떤 인도 여자가 나에게 보낸 의문의 메시지였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 Are you a girlfriend of xx? (네가 xx 여자 친구야?)‘

 

‘ Yes, I was. who are you? ‘ (응, 그랬었는데. 넌 누구야?) 


‘ oh. I’m his girlfriend too. lol just let you know that there are so many his girlfriends. He’s still seeing lots of girls every weekdnd and there are.... (아. 나도 걔 여자 친구야. 하하 그냥 걔가 여자 친구들 엄청 많다는 거 알려주려고. 걔 아직도 매주 여자들 엄청 만나고 다니잖아. 그리고 또 걔가..) ‘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내가 순진했구나. 무슨 정신으로 그런 이상한 사람에게 홀딱 콩깍지가 씌어서 이런 말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았다. 


그날은 정말 아침부터 시티를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결국 발길이 닫은 곳은 시티에 있던 한 성당이었는데 마침 미사가 끝난 참이었다. 근처 의자에 걸터앉아 소리 없이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며 얼굴 발그레 훌쩍거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필시 나를 '왜 저래...? 이상한 여자야'라는 눈초리로 지나갔을 것이다. 상관없었다. 혼자 비극적인 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울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커플의 여자분이 다가오더니 나에게 물었다. 



“ Hi.. Are you okay? Why are you crying out here? What’s going on? “ (안녕하세요. 괜찮아요? 왜 여기서 이렇게 울고 있어요? 무슨 일 있나요?)


“ You need some help? Is there anything that I can help you? “ (혹시 도움이 필요한가요? 제가 뭐 해드릴 게 있을까요?)



그녀의 순수하고도 진심 어린 위로가 내 눈물샘을 더 자극하였다. 청승맞게 이 맑은 주말 아침에 성당 근처에서 뭐하는 짓이람. 부끄러웠다.

 


"I’m okay, thank you. It’s nothing. thank you again."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별거 아니에요.. 정말 감사해요)



그녀의 도움 요청을 친절히 거부하곤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런 이상한 놈 때문에 흘릴 눈물도 아깝다. 저런 애들은 이제 다신 안 만나면 돼! 정신 차리자.’ 




오히려 고마웠다 그에게. 순진했던 나에게 한국이든 해외든 고달픈 연애사는 다 똑같다는 것을 일찍 알려 주었으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옛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 요새 친구들은 저처럼 터무니없이 순진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을 간다면 이런 친구들은 한 번씩 조심을 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정말 아시안 문화를 사랑하고 관심 있어하고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Yellow fever의 환상으로 아시안 여성을 한 번쯤 호기심으로 만나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잘 가려가며 만나는 것이 좋겠죠.) 





작가의 이전글 영어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비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