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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Jan 18. 2021

Ep.14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고단한 워홀의 삶



브리즈번에서의 삶은 단조롭고도 처량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즐거웠지만 그나마 있는 돈도 계속 쓰다 보니 잔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당장 내 앞에 닥친 위기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대로라면 금세 돈이 떨어질 텐데 일도 안 구해지고... 어쩌지 하고 있었다. 역시 가지고 온 얼마 안 되는 돈으로는 외국 생활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더 아꼈어야 했는데 자제를 하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했다. 이 시기엔 부끄럽게도 부모님께 몇 번 돈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해외에 나가 돈 벌고 경험 쌓고 온다고 자신만만하게 갔던 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빨리 일을 잡고 싶었다. 운이 없는 건지 뭐가 잘못된 것인지 레쥬메를 돌린 곳에서는 도무지 연락이 오질 않았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좋았지만 더 이상 이 상태로 지낼 순 없었다. 온 인터넷을 뒤지며 각종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고 좋은 자리라면 이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중 뭔가 하나를 찾았다. 브리즈번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곳이었는데 한국인 셰어 하우스였다. 외국인 셰어를 하고 싶었던 나여서 처음에는 조금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건 조건을 보고선 내심 고민이 되었다. 마스터(집을 렌트하고 있는 사람) 외에 하우스 메이트 2명이 더 있고(전부 남자였다), 생활비는 같이 모아서 셰어 하기로 한다. 또 그들 전부 근처 닭 공장에 다니고 있으며, 일을 구하는 사람들에겐 본인들이 공장에 같이 연결하여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되어 있었다.


공장 컨택을 도와준다고? 일을 구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워킹홀리데이로 온 사람들 중 공장 일을 생각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꿈의 직장이자 많이 받을 땐 주급이 1000불이 넘었다. 일은 많으나 생각보다 수월한 편이었고 칼퇴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 정도가 아니었다. 지인을 통해서 또는 유학원을 통해서 일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선택할 수 있는 조건도 많지 않았다. 돈이 부족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 사람의 판단력은 흐려진다. 평상시에는 객관적으로 보며 잘 구별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도 이런 상황들 앞에선 그저 물불 없이 덤벼들게 된다. 특히 돈에 관련된 상황들은 사람을 더더욱 그렇게 만든다. 스스로 비굴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호주에 오면서 오직 영어공부, 호주 원어민 친구들 만들기만 생각했던 나에게 위의 조건들은 거부할 수 없는 덫 같은 느낌이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국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사를 가는 당일날, 버스에 짐을 싣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멀어지는 브리즈번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지내는 동안 정이 들었는지 뛰쳐 내려서 다시 살던 동네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이사를 가는 지역에 다와 갈수록 계속 똑같은 풍경이었다. 드넓은 언덕과 논과 밭이 전부였다. 농장 풍경이 끝나나 싶으면 끝없이 펼쳐진 똑같은 장면의 언덕, 또 끝나나 싶으면 다시 농장과 밭이었다.


농장과 밭에서는 많은(멀리서 한눈에 봐도) 워킹홀리데이 워커들이 허리 한 번 못 펴보고 농작물을 따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선캡을 눌러쓴 채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쭈그려 앉아 직접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일하는 사람들, 기계 위에 올라앉아 마치 기계와 한 몸인 것 마냥 일하는 영혼 없는 모습의 사람들, 고개를 들어 상황을 한 번 볼라치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숨 막히는 농장과 밭.  


달리는 버스 안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시큰했다. 한편으로는 큰 걱정도 들었다. 정말 일이 다 잘못되어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면 여기 농장에 와서 일해야 하는데... 여기선 날 받아줄까? 내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차도 없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와야 하지?  

한숨이 나왔다. 마치 내 미래가 저 앞에 펼쳐진 황무지 한 언덕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한 채 허무하게 한국에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아니길 바라며 도착 전까지 잠을 청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뒤척이는 온몸으로 나의 고뇌와 스트레스가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인생에서 행복한 예감은 가끔 틀리기도 하나 슬픈 예감은 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을까?

  

 단연코 거기서부터 내 워킹 홀리데이 인생이 이렇게 롤러코스터를 탈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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