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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상 May 17. 2024

 브레이킹 배드 : 악의 합리화

두 개의 어구

인간은 늘 자책한다. 어제의 대화에서, 오늘의 선택 등 지나오고 지나갈 것들을 자책한다. 자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몫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작은 실수라면 훨훨 날려버리면 그만이다. 작은 실수로 나온 자책은 역시 작다. 그리고 가벼워 잘 날아간다. 그러나 자책을 유발한 행위가 커다란 죄이고 악이라면 그 자책은 내부에만 담아둘 수 없다. 바깥으로 흘러넘쳐 인간 내외를 모두 적실 것이다.  바다에서 건진 드레스처럼 흠뻑 젖은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죄의 차책이고 인간의 숙명이다,


오늘날 실수를 해 ( 그 강도가 어찌하든) 자책하는 자에게 해주는 조언은 현대인의 필수적인 마인드가 됐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자기 자신을 사랑해라' 같은 말들은 복잡한 현대 사회 속 개인의 필수적인 격언이다. 개인은 바깥의 복잡함을 담기에 너무 좁다. 따라서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것이 요구되는데 우리는 보통 앞의 두 어구를 통해 스스로를 담금질한다.


'요구된다'는 의미에서 보듯 좋은 것으로 보이는 두 지침, 하지만 문제점도 존재한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을 감출 수 있고, 자기애가 강조되다 보면 자신과 자신의 실수나 죄를 자신과 분리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것은 또 하나의 자기 부정과 이해의 결핍으로 연결된다.


역대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뽑히는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를 살펴보자. 마약왕에 오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는 월터 화이트와 그의 파트너 제시 핑크맨, 특히 제시 핑크맨은 앞서 말한 죄의 자책과 두 어구에 관련된 좋은 일화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과 그로 인한 항공기 폭발 사건에 큰 죄책감을 가지게 된 제시는 마약을 끊고 다시 마약 제조에 가담한다. 판매처를 고민하던 제시는 마약 중독을 치료받으며 재활 중인 자들을 선택한다. 재활 모임에 참석해 상담을 받는 척하면서 중독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자들을 상대로 약을 판매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재활 모임에 참석한 제시는 상담자의 "자신을 판단하는 것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는 말을 듣는다. 각자의 사연을 말하며 수긍하는 참석자들, 그러나 제시는 이를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분위기를 버틸 수 없던 제시는 자신의 살인 경험에 비추어 개를 죽였다고 거짓말로 고백한다. 이에 한 참가자는 제시를 비난한다. 그러나 상담자는 여기는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제시에게 자신을 탓하는 것은 어떤 의미도 없는 소용없는 일이라며 참가자를 저지한다.


이에 제시는 그럼 자신이 저지른 일을 판단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상담자는 그것이 '시작'이라고 대답하며 제시를 응시한다.  둘의 시선이 교환되고 울분을 참지 못했던 제시는 "어떤 짓을 해도 상관이 없는 건가요,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냥 받아들이라고요?" 라며 소리친다. 외침 속에는 상담자가 과거에 자신의 딸을 트럭으로 쳐 죽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냐는 질문까지 포함돼 있었다.


결국 제시는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한다.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유는 치료 따위가 아니라 마약을 팔기 위해 온 것이라고.


제시 핑크맨의 일화는 악의 합리화에 대한 인간군상의 인식을 보여준다. 심각한 죄를 저질렀어도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까?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그런 나를 사랑해야 되는 걸까, 아니 사랑할 수 있을까?


과거의 실수나 행동, 남에게 피해를 줬던 일들을 나와 분리시킨 다는 것은 어렵다. 기본적으로 내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이나 조건, 타인들이 영향을 줬을지는 몰라도 행한 것은 본인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면 처음에는 '긍정'한다. 어쩔 수 없었다 거나 혹은 다음에는 똑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기"가 작용하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한다 해도 진실을 피할 수는 없다. 잘못되거나 악한 일 자체를 긍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긍정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 또는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다." 같은 마음가짐이 자기 '긍정'의 요소로 작용한다.


자기 긍정은 당시의 마음을, 그때의 나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것은 나를 소중하게 해야 한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즉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가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이해의 과정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특히 자기 자신의 가치가 인정받고 자산이 되는 오늘날에서는 최우선의 자세다. 수없이 많은 인간관계, 개인이 노출되는 상황의 수, 그 속에서 행하는 행위에서 부정적인 결과는 당연히 나타난다.  이것을 견디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것은 필수일 것이다.


다만 우리가 남에게 피해를 줬거나 심각한 죄, 다른 말로 '악'을 저질렀을 때는 다른 경우가 된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사랑할 수 있을까, 브레이킹 배드의 제시 핑크맨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상담가가 될 것인가? 이는 어려운 문제이다..


나도 남에게 피해를 줬던 일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가 되면. 나는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진중하고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왜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지?", "주었던 피해가 아닌 내가 입었던 피해는 부정할 수 있는 건가?"라는 자책의 말들을 되새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때로는 결이 다른 자책을 하기도 한다. 못난 나로 인해 발생했던 어려운 일들, "너는 앞으로도 잘하지 못할 것이다"는 말을 떠올리며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물론 내가 했던 일들이 <브레이킹 배드>에 나왔던 일들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 또한 보통의 우리가 그런 심각한 죄나 악한 행위를 행할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쌓이게 되는 모든 것들과 제시 핑크맨의 죄를 인정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너는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순간에서 너무나 다분히 발생하는 생각이기에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다. 지나친 긍정이나 사랑이 아닌 "내게도 이런 모습이 있으니 앞으로 더 조심하고 반성하자"가 오히려 더 좋은 처방약이 될 수도 있다. 핑크맨처럼 거대한 악이라면 소용이 없겠지만  알다시피 우리가 그런 커다란 악을 저지를 확률은 낮다. 그렇다면 때때로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져보며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브레이킹 배드>는 악의 심각성과 합리화, 즉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에 무거운 메시지를 던진다. 자신의 잘못이나 죄, 악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자세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 아닐까.

떨리는 눈빛과 격정으로 자신을 토해내던 제시 핑크맨의 눈빛을 다시 기억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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