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무더운 휴일 개망초 흐드러진 집 앞 공원을 걸었다.몇 년 전 거금을 들여 구입한 카메라를 꺼내 둘러메고서 산들바람에 살며시 흔들리는 개망초를 담으며 길을 걸었다. 까치 한 마리가 토끼처럼 깡총거리며 인도 위를 걷다가 나뭇가지 위로 날아올랐다.
불현듯.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한번 잡아볼까?!'
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더러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나 참새를 카메라에 담기는 했지만, 막 날아오르는 비상의 순간을 잡아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뭐... 여러 번 누르다 보면 찍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카메라 설정을 조정했다. '조리개 우선'에서 '완전 수동'으로. 움직이는 피사체는 그저 빠른 셔터 속도가 되어야 하니깐...
저~어기 나무 위에 '비둘기'가 내려앉았다.
얼른 카메라 확대기능을 주욱, 주욱~ 당겨서..., 녀석의 엉덩이에 '보기창(Viewfinder)'을 들여대었다.
'앗... 실례^^'
셔터를 한번 '찰칵' 눌러주고, 녀석의 다음 행보를 기다렸다.
'날아올라라... 우아하게 날아올라라~~. 멋지게 찍어줄게 ㅋㅋㅋ'
십여 초가 흘렀다. 최대한 당겨 확대한 녀석의 엉덩이가 흔들렸다. 확대상태에서 상대를 잡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녀석을 다시 '보기창(Viewfinder)'에 넣기 위해 팔을 움직였다.
'휘리릭~~~'
팔을 움직인 찰나의 순간... 녀석은 나뭇가지 위에서 사라졌다.
심기일전!
첫술에 배부르랴!!
공원은 넓고 새는 많다. 빠샤~~~!!!
다음 피사체를 찾아 눈동자를 굴렸다. 또 한 녀석이 엉덩이를 보여준다.
'이 놈들이 뵈는 놈마다 똥꼬를 들이대냐'
어쩔 수 없다. 지금 새대가리, 새 똥꼬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이쁘게만 날아다오~!
앉아 있는 자태를 한 장 찍어 주시고, 녀석이 날아오르길 기다리다 잽싸게 셔터를 눌렀다.
빈 나뭇가지가 찍혔다.
'음... 셔터 스피드만 1/1000초니 1/2000초니 조정해서 될 일이 아니군!'
'아... 7장 연사 기능이 있었지!^^'
다시 설정을 변경했다.
'짜식들 다 주거쓰 ㅎㅎㅎ'
이젠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녀석들의 날개를 담을 수 있겠다는 흐뭇한 상상에 다음 녀석을 찾아 눈을 돌려댔다. 저 먼 나뭇가지 위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직박구리' 한 녀석을 발견했다.
가는 나뭇가지인데 녀석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삼십 도를 넘는 날씨라 더운 기운이 몰려왔다. 녀석을 조준하고 있는 내 위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그늘에서 겨눴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다. 최대치로 확대(Zoom)했더니 내 숨결에 녀석의 모습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숨을 참았다.
'내 이 놈을 꼭 찍고야 말리라'
음... 하필 인내심이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났다. 숨을 참고,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은 날아오르지 않는다. 앞에 찍었던 몇 녀석들은 몇십 초 정도면 후다닥 날아올라서 바로바로 찍지 못한 아쉬움을 남겨 주더니... 이 녀석은 쨍쨍한 햇살에 일광욕이 즐거우신 건지... 한치의 움직임도 없다.
녀석이 몸을 살짝 움직이더니 한껏 부리를 벌려 소리를 내었다.
'착,착,착,착,착,착,착'
셔터를 누르자 연사로 맞춰둔 카메라 불을 뿜... 아~ 총이 아니지... 일곱 장을 찍어댔다.
하지만 녀석은 그 자리에 있었다. 부리를 벌린 모습이 찍혔다.
몇 킬로그램씩 나가는 'DSLR(렌즈 교환식 카메라)'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의 다섯 배 이상 무게가 나가는 '하이엔드' 카메라다 보니 팔이 아파왔다. 팔과 어깨에 카메라 하중을 줄일 수 있는 자세로 몸을 움직였다. 그 사이 녀석은 꼼작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 휴... 다행이다. 잠깐 움직이는 사이에 놓친 게 몇 녀석인가.! ㅋ. 또 몇 분의 시간이 흘렀다. 자세를 고정하고 있는 것도 고역이다. 이 여름 더위에. ㅠ.
움직이는 듯하여, 연사 버튼을 누르기를 몇 차례...
'아.. 힘들다. 빨랑 좀 날아가라 ㅠ'
십여분을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먼저 포기하지도 못하고 계속 1.2Kg짜리 카메라를 고정한 채 숨을 참으려 애를 썼다. 드디어 녀석이 날아올랐다. 낚시로 치면 찌가 움직였다. 낚싯대를 낚아채야 한다. 순간 셔터를 눌렀다. 작지만 또렷하게 들려오는 카메라 셔터음. 얼른 작은 모니터 창을 확인해 보았다. 직박구리의 날개가 쫘악 펼쳐진 모습을 기대했는데, '우아한 날갯짓'... 그런 장면은 없었다. 기대감과 현실은 일치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날아오르는 장면이 찍히긴 찍혔다. ㅋㅋ)
'아... 쉽지 않네. 새 찍는 게 보통일이 아니구만'
계속 '새의 비상'을 찍을 것인가. 포기하고서 '예쁘고, 얌전하고, 말도 잘 듣는 꽃'이나 찍을 것인가? 새의 비상은 구글링 하면 다 나오는데... 갈등이 생겼다.
아호... 힘들어. ㅠ
'아냐... 여기서 멈출 수 없어!!!'
다시 하늘에 떠 다니는 지엄한 생명체를 찾아 나섰다.
'까치' 두 녀석이 데이트하는 장면을 담았다.
'두 놈 중 한놈은 날아오를 때 걸리겠지. 아... 두 놈(者)이 아닌강?'
하는 막연한 확률적 기대감에 다시 힘을 내었다. 하지만... '후다닥'도 '푸드득'도 아니고 '호닥', '포닥' 하더니 두 녀석은 데이트 장소를 이리저리 옮겨 다녔고, 내 지친 카메라는 감히 꽁무니를 쫒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시 다른 녀석을 겨눴다.
귀엽게 생긴 녀석 '직박구리'는 마치 '나이트클럽' 싸이키 조명 속 몸짓처럼 눈번쩍 하는 순간마다 고개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며 나를 긴장시켰다. 그리고는 내 카메라 메모리에 녀석의 꼬리를 남겨주고 가버렸다.
다음엔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앉아있는 '까치'를 발견했다.별 기대는 안 했지만, 이 녀석에게도 관성처럼 셔터를 눌러댔다.날개를 펼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네모난 영역 바깥으로 추락하듯사라졌다(아래 1,2,3번 사진).(4번 컷은 인도 차도 분리대 위에서 앉았다 떠오르는 녀석을 쫓아가서 찍은 사진)
몇 시간이 흘렀다.
몸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 포기하고 무너질 수 없었다.
다시 심기일전... 아! 지금 뭐 하는 거지?
심한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번 무거운 카메라를 꺼냈으면 '썩은 무'라도 썰...
시간이 꽤 흐른 탓에 허공에 대고 사진을 찍기에는 좀 어둑해졌다. 광감도(ISO값)를 좀 높이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보기창(Viewfinder)'에서 또렷하게 보이던 녀석들이었는데, 이젠 그림자 윤곽(실루엣)처럼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찍어보자'
이번에 관두고 나면 다시는 '날아오르는 새님'을 찍겠다는 만용을 부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냥 그건 전문가가 하는 영역이라고. 사실... BBC 동물 다큐 이런 거 보면 호랑이 등등 찍으려고 춥거나 더운 은신처에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버티지 않던가!
'나는 전문 사진가가 아니야!!! 개발자야!!!'
어쨌건 또 어스름 속에 '직박구리'로 보이는 한 녀석을 카메라로 조준했다. 뭔가 찍힐 거라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나뭇잎 뒤에 앉아서 제대로 초점 잡기도 쉽지 않았다. 언제 날아오를지 모르는데 위치를 옮기기도 그랬다. 그냥 더 어두워지기 전에 셔터나 한번 더 눌러보려고...
드디어 날아올랐다.
저녁이 다 되어 가는 시간대라 녀석의 모습이 그림자 윤곽처럼 메모리에 남아 아쉽기 짝이 없지만, 7 연사 기능을 활용한 '새의 비상(飛上)'이 찍힌 순간이었다. 말 잘 듣는 '착한(?) 꽃'이나 찍어내던 비전문가인 내게는 이 정도 사진도 과분한 결과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다 우연히 '새의 비상' 사진이 찍힐지(얻어걸릴지)는 모르겠으나, '의도한 촬영'으로 이 정도 결과를 내기는 앞으로도 만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시도 자체를 하게 될 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새의 비상이나 맹금류가 멋지게 활공하는 사진을 보며, '이런 사진 찍기가 쉽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만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직접 시도해 보지 않았다면 몸으로 느낄 수 없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