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거리지 않는 꽃나무 아래

어떤 아름다움은 슬픔과 한쌍

고향 마을 어귀로 들어서면 벚꽃 나무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꽃나무로 이름난 곳을 더러 돌아다녔지만 이곳만 한 곳도 흔치 않다. 언제 자라나 싶었던 벚나무가 늠름한 성체가 되어 있다. 감탄하는 마음 한편에 아쉬운 마음 역시 함께다. 남모르게 만개한 벚꽃은 또 남모르게 저물어 사라지겠지. 정점의 순간은 늘 미리 하는 작별인사 같다.

마을 초입부터 심어진 꽃나무는 길 중반쯤 펼쳐진 저수지의 처음과 끝 둘레까지 풍성하게 감싸고 있다. 저수지 끝에서 도로의 방향이 직선과 오른쪽으로 나뉜 곳. 기로에 선 벚꽃 나무는 옳은 길을 일러주는 방향 표지판처럼 납골당과 공원묘지로 방문객들을 인도한다.

종종 길가에 차를 세워 벚꽃을 구경하는 이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 대부분이 추모객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날에도 꼭 저렇게 피어 있던 꽃나무를 올해 또 마주하게 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벚꽃으로 유명한 다른 곳들과 달리 여기 꽃나무 아래 시선을 빼앗긴 그들은 깔깔거리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올려 벚꽃에 시선을 맞추곤 느긋이 그 자리를 서성거린다.

"벚꽃 보러 가자."

내가 지금보다 어리고 차도 없던 시절의 일이다. 아빠의 벚꽃 보러 가자는 한 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너도나도 차에 올라탔다. 차편이 흔치 않은 시골에선 꽃구경을 가는 데만도 여간 품이 드는 게 아니었다. 특히 차도 없고 걷기에 취약한 이들에게 윗마을 벚꽃길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가까운 곳이라도 마음이 멀어 벚꽃이 다 저무는 무렵까지 근처의 벚꽃길을 구경하지 못한 채 한 해를 흘려보내는 이들이 허다했다. 꽃이 만개한 수일 동안 겨우 마음을 먹어야 다녀오는 길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고개를 쭉 뺀 채 벚꽃으로 가득한 길을 아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생업에 용쓰느라 진이 다 빠져 나들이라곤 엄두도 못 내었던 그녀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네."

엄마에겐 신앙이 없었으나 아름다운 것을 볼 때에 그녀는 종종 천국에 빗대어 표현하고는 했다. 차창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죽어야 우리가 사는 거야."

꽃구경을 하며 하는 말로는 영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우리 가족의 맥락에서 바라봤을 땐 퍽 들어맞는 말이었다. 낮게 수긍하던 내 고개도 그녀가 한 눈 팔린 벚꽃에게 돌아갔다. 엄마의 말은 종종 이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삶의 방향표지판 역할을 할 때가 많았다. 누군가의 상실이 곧 우리 가족의 삶이었던 매일은 초면인 이의 죽음을 끝없이 애도하는 나날이기도 했다.

수십 년 전 아무도 관심 주지 않았던 마을에 납골당과 시립묘지가 들어선다 공표되었을 때 우려와 기대로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먹고 살 고민을 조금은 덜었다는 사람들과 고향의 이름에 죽음과 관련된 언어가 덧씌워지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들로 나뉘었었다. 감성을 앞세운 반대는 먹고살아야 할 많은 이유 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마을이 추모객들로 북적거리게 되며, 전부터 근근이 마을 사람들이나 저수지 낚시꾼들을 상대로 술과 음식을 팔던 우리 집도 덩달아 오가는 발길이 늘었다. 그러니 강아지와 덜렁덜렁 뛰어다니던 꼬마애를 성년이 넘을 때까지 키워낸 몫에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죽음의 덕 또한 있는 것이다.

도로 양옆에서 팔을 쭉 뻗어 서로를 껴안은 형태로 이어진 벚꽃 길은 현실과는 다른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신비로운 통로 같았다. 그 길 끝에서 마주한 추모객들의 얼굴은 마치 닳아버린 지문을 닮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하는 감탄도, 슬픔에 일렁이는 눈빛도 아닌 그저 담담하거나 무심해 보이는 얼굴로 꽃나무 아래를 오가는 그들.

묵념하듯 고요한 풍경 속에서 마냥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이는 누구일까. 천국 같다 말하면서도 죽음과 멀어져선 살 수 없단 본심을 털어놓은 엄마의 마음은 아름다움과 슬픔 중 어디에 더 가까웠을까. 눈길이 닿는 곳마다 흔하게 핀 벚꽃을 보며 아름답다 여기면서도 동시에 치미는 슬픔을 삭일 길 없었을 사람들은 시간이 슬픔을 해결해 준단 미신 따윈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겐 상실의 형상. 다른 누군가에겐 가족을 먹여 살릴 업. 꼴이 다른 두 마음일지라도 때마침 거기 나란히 서 있게 된 그들이나 우리 중 누구 하나 깔깔거리지 않는 것만은 같다. 발소리를 죽이며 말을 삼킨 까닭일까. 활짝 핀 벚꽃의 색과 수천만장을 훌쩍 넘을 꽃잎이 바람에 서로 부딪혀 흔들리는 소리가 유독 선명히 느껴지는 듯도 했다. 아름다웠다. 슬펐다. 둘로 쪼갤 수 없는 한쌍의 감정에게 부여된 적절한 단어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