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해줄까?"
결혼해 독립한 내게 엄마는 수시로 묻는다. 마치 귀한 패물이라도 내주는 것처럼 은밀한 목소리다. 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으로 우리의 거래는 성사된다.
김치찌개는 엄마가 만든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엄마의 김치찌개라면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다시 숟가락을 들 정도였다. 간식으로도 먹고 식사로도 먹고 그냥 심심하다는 이유에서도 먹고……. 한 솥을 해 놓으면 나 혼자 먹는대도 이틀 안엔 동이 났다. 삼시 세끼를 다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찌개로 해결한 적도 많았다. 짭짤한 정도가 강하고 매운 정도도 강한, 재료도 맛도 평범한 기준의 두 배쯤은 가뿐히 넘는 그 맛은 가족 중 유독 나 혼자만의 입맛에 최적화된 음식이었다. 어쩔 땐 거의 보름 가까이 김치찌개만 찾아댔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질리는 기색 없이 내게 김치찌개를 만들어주었다. 가족들은 내 유별난 식성에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만은 날 이상해하기는커녕 자신이 만든 음식을 잘 먹는 내 모습에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난 그런 엄마의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별로 내키지 않는대도 김치찌개를 만들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럼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기꺼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엄마는 늘 일에 치여살았다. 바쁘고 성실한 사람들의 순위를 매겨볼 수 있다면 당당히 상위권에 들 만한 사람이었다. 일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것처럼,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도 쓸모 없어지는 것 마냥. 오히려 그녀는 쉰다는 것을 속박과 같은 선상에 두었다. 자식에게까지 그 업이 나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틈틈이 식당에 온 손님들의 잔심부름이나 반찬을 나르고 치우기를 반복하며 엄마의 충실한 '고양이 손' 노릇을 해왔다. 십 대에서 이십 대가 되고 삼십 대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 내 생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 그곳에서 나는 이 땅에 존재하는 다양한 군상을 겪었다. 어느 날은 억지를 감내해야 했고, 또 다른 날엔 면전에 쏟아지는 욕지거리마저에도 반박할 수 없었다. 네 위치는 당연히 자신의 아래라는 듯 하대하는 이들 앞에서 할 말을 삼키고 고개를 조아려야 했던 순간마다 나는 엄마를 미워했다. 부모의 업은 종종 자식에게까지 같은 부채감을 지게 한다. 겪지 않아도 될 일과 상대하지 않아도 됐을 이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며 한참 울다 내 부모도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결말에 이르곤 했었다.
그런 순간은 드디어 날 무뎌지게 만들었다. 뾰족한 돌멩이가 몰아치는 파도에 마모되는 것처럼. 피하고픈 이들의 억지스러운 순간에 홀로 내몰리는 일이 연달아 생기다 보니 스스로 덤덤해져버린 것이다. 끊임없이 사포질 당한 마음이 영영 상처만 받을 것 같던 이해 못 할 상황들을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했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태도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배설 같은 말에 눈물부터 쏟아졌던 날들. 황당하고 억울해도 그 자리에서 항변의 말 한 줄 하지 못하다 한참 뒤에나 후회하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종양처럼 부푼 마음의 앙금을 안고 밤을 새야 했다.
"김치찌개 해줄까?"
지하에 고꾸라진 내 기분을 그나마 원래 있던 곳으로 끌어올리는 건 텅 빈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며 혼자 느릿느릿 먹어치우는 엄마의 김치찌개였다. 방해 없이 오직 티브이와 맵고 짠맛에 몰두하는 순간만큼은 아귀 같던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해지곤 했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끓인 뜨거운 김치찌개 한 솥에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럼 엄마는 꼭 내게 "맛있어?"라는 물음을 던졌다. 내가 속이 상한 것이 자신 탓인 것처럼 주눅 든 목소리였다. 맛있다는 내 대답에 엄마는 마치 용서를 받은 사람처럼 맥없이 웃고는 돌아 나갔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내가 홀로 끙끙 앓을 때마다 엄마는 살며시 다가와 김치찌개를 끓여줄까, 하며 물었다.
어느 날은 이것저것 다 싫은 마음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김치찌개를 끓여놓았으니 이따 배가 고프면 먹으란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그리고 한숨. 그녀의 기척이 멀어진 후에도 나는 한참을 웅크려있다가 반나절 동안 스스로를 가두었던 방 밖으로 발을 내밀곤 했다.
텅 빈 거실 한쪽에 한 솥 넘칠 듯 끓여진 김치찌개가 있었다. 난 그걸 다시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바글바글 끓여 냈다. 뜨겁고 짜고 얼큰한 국물에 밥을 비비자 잊고 있던 허기가 느껴졌다.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나면, 밥을 먹기 전까지 왜 그렇게 마음이 어지러웠는지 조금은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땅에 박힌 암석 같은 앙금이 언제든 캐낼 수 있는 무른 진흙으로 뒤바뀌었다. 음식을 만들고, 건네고, 먹는 모든 과정이 내겐 회복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이었다.
김치찌개를 끓여주는 건 표현에 서툰 엄마가 내게 보내는 일종의 은어였다. "미안해, 고마워, 수고했어, 사랑해……." 애정하는 이에게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단어들이 짜고 매운 한 솥에 집약된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아니면 어디서 먹건 그다지 감흥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엄마의 김치찌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빠듯하게 휜 손가락으로 대충 만든 찌개를 떠올리면 밥을 다 먹은 후에도 침이 고인다. 썰렁했던 마음에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다치거나 공허해진 마음에 유독 잘 드는 보약 같다. 그걸 엄마도 안다.
결혼 전에도 후에도, 속상해 찌푸려진 내 미간만 보고는 엄마가 묻는다.
"김치찌개 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