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태기 속 감이 곪았다. 노인은 곪은 곳만 잘라내면 배탈 날 일 없다 성화다. 진통제가 한 통 비었고 잡다한 종이로 서랍은 가득하다. 노인은 읽어 본 적 없는 모를 글 투성이다. 해가 들기도 전에 품앗이를 다녀와 까부는 똥개랑 태연한 고양이 두어 마리의 끼니를 챙기는 게 다다. 그래도 여러 잡놈 수발을 들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라 한다.
"암시도 안타더라 약만 잔뜩 주고."
힘주어 쥐고 있다 영영 구김이 간 삼베 같은 노인의 손에선 들깨 나물 무침 냄새가 난다. 배탈이 날 때면 쑥쑥 문지르던 손으로 망태기를 뒤적인다. 곪은 데 없이 잘 생긴 감 하나를 깎아 내민다. 곪은 건 반 뚝 잘라 닳고 깨진 이로 오물거린다. 껍질이 발꿈치에 수북하다.
"암시도 안타데. 언능 뒤져야 쓴디."
"할머니 오래 살겠다. 허리도 꼿꼿하고 살도 있네."
"맛이 들었지. 옆집서 주더라. 싸주까."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웃는다.
글자도 못 읽고 귀가 먼 채, 그래도 손주 웃고 우는 건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