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 먹은 노인이 아이처럼 울었다. 한겨울 평상 모퉁이에 걸터앉아 잉잉거린다. 나는 놀라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약한 뼈대가 한 품에 들어왔다. 아흔이 아닌 아홉 살 아이 어르듯 왜 우느냐 물었으나 이가 다 빠진 입술에선 연신 울음만 흘러나왔다. 노인의 곁에 서있거나 앉아 집에 돌아갈 차를 기다리던 노인들 모두 담담하거나 우스운 것 대하는 눈빛이다.
”아파서 그렇지.“
누군가 아흔의 노인이 우는 이유를 설명해주었으나 무엇이 어떻게 아픈지는 말을 아낀다. 나는 몸이건 마음이건 어딘가 분명 사달이 난 듯한 노인을 달래며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아픈 어른을 마주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내 앞에서 자주 울고는 했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피가 진하거나 흐린 이들 할 것 없이 아이 앞에서 더 아이처럼 울고는 했었다. 처음엔 두 눈에 부글부글 분노를 태우더니 이내 경직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입술을 벌리는 것이다. “흐어엉, 이이잉, 흐으으.” 단어로 표기하면 어린양 가득한 어색한 발음이 귓가에 선명하다.
덩치가 크거나 작거나 그러나 언뜻 마주친 그들의 눈에 드러난 막연함과 불안감과 공허와 외로움 따위가 나는 무척이나 무서웠다.
어른이 운다는 것은 한때 내가 가장 겁을 내는 일 중 하나였다. 큰 산처럼 견고해 보였던 존재가 실은 한 번도 굳어본 적 없는 활화산이었다는 걸 깨닫는 일이었다. 불이 끓고 넘쳐 흐르며 남은 것이라곤 온통 잿더미인 그곳에서, 나는 쓰러지지 않으려 용을 쓰지만 결국엔 서서히 고꾸라지고마는 깃대 하나였다.
아이가 겁을 먹은 것도 모르고 어른들은 마음껏 아픔을 드러냈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하지만 뭣보다 아픈 걸 알아주지 않는 상대의 무심함에 더욱 아파했다. 눈썹이 휘고 콧잔등이 쪼그라들고 입매가 당겨지며 시려워 가늘게 뜬 눈꺼풀 사이로 눈물을 쏟아낸다. 멈추고 싶고 멈춰야 한다는 걸 알지만 끝내 멈추지 못하며 그들은 주저앉았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들의 몸을 거친 너울 한가운데 유일한 부표처럼 붙들고는 했다.
“아파서 그렇지.”
이제 누가 나를 봐도 어른의 외양인 지금, 나는 갑자기 길을 잃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허공은 까맣고 바닥은 진창이다. 어른이라 불리지만 어른이 될 수 없는 한계를 느끼며 무력해진 순간, 나는 내 앞에서 울던 어른들이 그랬듯 한껏 엎어져 엉엉 울고 싶다.
알고 겪은 것이 아이보다 조금 더 많을 뿐인, 사실 나는 어른이라는 얇은 외투를 뒤집어쓴 어리숙한 인간이다. 검고 주름 많은 얼굴을 찡그리며 우는 아흔 살 노인도 이와 다르지 않은 마음일까.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노인의 어깨를 안고 그녀의 굽은 등을 느릿느릿 쓸어내린다. 어디가 아픈 줄도 모르면서 마냥 괜찮을 거라 말하며. 안의 것이 다 타다 언제 바스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앙상한 나무토막 같은 몸이 내 쪽으로 기울었다.
어른을 기다리다 지친 어른은 아흔이 되어서도 돌아갈 길을 모른다.
한참을 울다 태연해져도 어느 때 문득 주저앉아 다시 울어버릴 것이다. “엉엉, 잉잉.” 본 적 없는 어른을 부르다 쉬어버린 목으로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