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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로옥 Oct 25. 2024

새벽 4시의 응급실

괜찮아




남편이 배를 잡고 데굴거렸다. 진통제를 먹어도 복통은 더 심해져 갔다. 식은땀이 흐르고 안색이 창백한 채 굽은 허리를 붙들고 홀로 사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사실 느닷없이 내 이름이 불려졌을 때부터 온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선 상태였다. 간편한 복장에 모자를 눌러쓰고 차에 오른 것이 새벽 4시였다. 우리가 없는 사이 짖어 이웃에게 피해를 줄까 데려온 반려견이 뒷좌석에 웅크려 눈을 끔벅거렸다. '어디 가요?' 갑작스러운 새벽길에 녀석도 황당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죠?' 큰 눈이 그렇게 묻는 듯했지만 나도 남편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조수석에 기진맥진 늘어져 있는 남편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소 흔히 지나치는 병원 가는 길도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다시 지도를 그려야 했을 정도였다.


불안하고 아픈 두 사람이 달려 도착한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병원 사정상 거절을 당한 우리는 곧장 다른 병원으로 운전대를 돌려야 했다.아픈 사람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겉으로는 남편을 달랬지만 속이 떨리는 건 어쩔 길이 없었다. 다행히 두 번째 병원에선 남편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요로결석 판정을 받았다. 산통 못지않은 고통으로 악명이 높다는데 과연 진통제 두어 번으로도 쉽사리 통증이 잡히지 않았다.


여러 가지 검사와 링거 세 번을 바꿔 맞는 사이 고통에서 조금 해방된 남편이 내게 괜찮으냐 물어왔다.


"출근해야 하는데 잠도 못 잤네. 미안. 피곤하지?"


자신이 아픈 게 먼저일 텐데 누가 누굴 위하는지. 시간은 새벽 4시를 훌쩍 넘은 상태였고, 몇 시간 뒤면 출근해야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어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대답과 물음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요로결석이라 다행이라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싱거운 소리를 몇 마디 나누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동안 응급실엔 우리와 비슷한 몰골의 사람들이 빈번히 드나들었다.


식중독에 걸린 딸을 위해 새벽길을 달려온 엄마.

아들 등에 업혀온 늙은 아버지.

아내의 방광염 통증으로 혼비백산한 남편.

혼자 걸어 들어와 담담히 자신의 병증을 읊조리는 사람까지…….


그들을 맞이하는 의료진은 느닷없는 상황에 얼떨떨해하면서도 공포에 질려 있는 사람들을 차분한 태도로 상대했다.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으나 눈빛과 손짓, 말씨 등 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온갖 태도로 아픈 이와 보호자를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당신의 병증은 흔한 것, 고통은 사라질 것, 이미 여기에 와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무조건 괜찮아질 거예요.'


새벽 4시가 7시에 다다를 동안 각자 사연도 목적도 다양한 이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했다. 고통에 풀이 죽은 이들과 졸음기가 그득한 눈을 힘껏 떠올리고 그들의 곁을 지키는 보호자들.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이지만 환자의 병증과 호전 상태를 나긋한 목소리로 상세히 풀이해 주던 간호사. 뒤늦게 뜬 검사 모니터를 확인시켜 주며 "동글동글 예쁜 결석이네."라는 장난기 어린 말로 내내 긴장하고 있던 우리 부부 입매에 헐렁한 웃음을 선사해 준 의사. 채 동이 트기도 전에 넓은 응급실 안을 부지런히 들썩이던 청소부들.


이제 막 거꾸로 돌린 모래시계처럼 수액 방울도 느리게 떨어졌다. 같은 공간에 앉고 누워 엇나가듯 마주친 허공 속 시선들에서 동질감을 엿봤다. 응급실 입장 직후의 소란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우린 4시에서 7시로 넘어가는 몇 시간을 잠잠히 견뎠다. 새벽의 응급실이라서인지 다들 목소리 톤이 낮고 작았다. 그래도 한 단어만은 흔하고 선명하게 귀에 와 걸렸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딸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남편이 부인에게. 홀로 온 남자가 전화 속 누군가에게.


안도하며 뱉는 말들이 바깥 하늘의 어둠처럼 푸르게 흩어졌다. 새벽 4시에서 아침 7시. 캄캄한 몇 시간을 용감하게 버틴 이들이 하나 둘 병상을 떠났다.


안녕히 가시란 나긋한 작별 인사가 마치 우리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길 같았다. 생전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는 제각각이 함께 지새운 짧은 시간. 새벽 4시와 7시 사이의 응급실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느닷없고 두려웠다 안도했을 공통의 순간을 종종 기억하다 가끔 대답 없는 안부를 물을지도 모르겠다.


안녕,

괜찮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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