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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로옥 Oct 16. 2024

소란

어떤 생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것


   


제비 둥지가 박살이 났다.


할머니가 내지른 기함 소리에 달려 나가니 난리가 나 있었다. 처마에 터를 잡은 제비 둥지가 밤새 내린 매서운 빗발로 인해 땅에 곤두박질친 상태였다. 할머니와 엄마, 언니 등 삼대에 이은 요란한 호들갑을 뒤로한 채 나는 냉큼 소매를 걷어 올렸다. 거기 모인 사람 중 털이 난 생물을 가장 잘 다루었기 때문이고, 박살 난 둥지 속에서 언뜻 보이는 제비 새끼 한 마리가 죽지 않고 꿈틀거렸던 것 같아서였다.


작은 나뭇가지와 지푸라기. 외에도 흙과 플라스틱 조각 따위를 얽은 더미 속에 새끼 제비 세 마리가 한 몸처럼 뒤엉켜 있었다. 깃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작은 몸뚱이들이 힘없이 버둥거렸다.


구경은 짧았다. 얼른 부엌에서 큰 쇠그릇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새끼들이 동시에 울고 있었다. 털 있는 생물에 진저리를 치는 이들이 번갈아 내 이름을 불러댔다. 동시에 손에서 놓친 그릇이 시멘트 바닥과 부딪혀 쨍한 여음을 냈다. 머리에서 왈칵 김이 솟구쳐 오르는 기분이었다. 팽이처럼 도는 그릇을 낚아채니 여태 보이지 않았던 부모 제비가 이 소란에 힘차게 가세했다.


인간의 관찰이 부재했던 지난밤, 그저 시끄럽게 날아다니는 것만으로 땅에 떨어진 둥지 주변을 배회하다 어쩌지 못해 쉬고 있다가 인간들이 자신의 새끼들을 해할 것 같으니 기겁해 날아든 모양이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수건을 접어 바닥을 고르게 다진 그릇 속에 새끼 제비들을 차례로 옮겨 담았다. 엉망으로 망가진 둥지 속에서 끌려 나온 새끼 제비들은 이 상황이 못마땅한 듯 깃털이 드문드문 나기 시작한 날개를 파닥거렸다. 단단히 여물지 못한 새의 발톱이 수건의 성긴 부분마다 걸렸다. 한 번씩 파닥거릴 때마다 마치 그물에 걸린 듯 절뚝거린다. 제비들이 만든 것처럼 똑같은 둥지를 내놓을 수 없는 노릇이니 새끼들은 이 좁고 불편한 그릇 둥지라도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둥지 비슷한 곳에 놓이니 다시 기가 살아 빽빽 소리를 지른다.


살겠구나. 네 놈들.


문제는 부모 제비였다. 추측하건대 올해 처음 알을 품은 초보가 분명했다. 비바람이 들이칠만한 곳에 헐거운 둥지를 짜놓았으니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 게 아닌가. 제비가 우리 집 처마 곳곳에 둥지를 틀어 온 지 벌써 여러 해인데, 하룻밤 사이 둥지가 박살 난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툰 것은 제비나 인간이나 다를 바 없다. 나는 혹시 새끼 제비들이 놓인 쇠그릇 둥지를 부모 제비가 둥지로 인식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다가갈라치면 소스라치듯 멀어지는 부모 제비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리고는 말했다.


"여기 네 애들이 있어. 여기, 여기라고."


쇠그릇 둥지를 높은 데 올려두고 멀어진 한참 뒤에야 부모 제비가 새끼 곁으로 찾아왔다. 소란 뒤에 날들은 평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부모 보단 작은 몸들이 하나 둘 쇠그릇 둥지를 박찼다. 처음엔 시험 삼아 날다 둥지로 다시 돌아오더니 어느 날엔간 하루 이틀씩 보이지 않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세 마리의 새끼 새와 부모 새 모두 그곳을 떠났다.


다음 해가 돼도 제비는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 난리가 났었으니 앞으로 계속 찾아오지 않을 모양인가 싶었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길이 없었다. 매 년 둥지가 지어지던 처마 곳곳을 향해 수시로 고개를 처올리던 때였다. 무심코 바라본 처마 밑에 둥지가 지어지고 있었다. 이번엔 왜 이리 늦게 왔느냐 타박하다가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에 찾아왔던 부모 제비인지, 차례로 둥지를 떠나갔던 새끼 제비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짝을 만나 돌아온 것인지, 혹은 모두가 난리통이었던 소란을 전해 듣지 못한 다른 놈들인지…….


언뜻 봐도 지난 둥지보다 튼튼했다. 그래도 둥지가 무너졌던 일이 계속 떠올라 불안했던 우리 식구들은 결정을 내렸다. 둥지 아래 넓은 철판을 덧대주기로 한 것이다. 전보다 더 길고 거센 장마가 예보되었기 때문에 혹여 둥지가 박살 나도 살아날 방편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부모 제비와 인간들이 조금 더 힘을 보탠 둥지에서 새끼 제비들은 잘 자라주었다. 한 살 아이 주먹만 한 작은 새들이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부리를 쩍쩍 벌린다. 부모 제비들이 부지런히 벌레를 물어 와 쩍 벌린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다. 단순한 행동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했다. 살아라, 살아라, 쑥쑥 자라라.


전보다 조금 늦게 찾아든 처마 밑 소란이 마냥 반갑다. 인간의 말귀를 알아듣는다면 지난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너희를 어떻게 살려놓았고 부모 제비와 인간들이 벌인 서먹한 협동을 구구절절 설명해 줄 텐데. 많은 말은 미소로 대신한다. 별 탈 없이 자라달란 기원을 인사처럼 건넨다. 이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해도 처마 밑 한 계절이 소란스러우면 좋겠다. 인간이건 인간 아닌 작은 새들이건 겨우 한 철 머무르다 떠나는 것만으로도 어떤 생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므로.


평이해 심란하고 문득 없어지고픈 날에 꺼내어 볼 소란의 풍경. 오직 삶을 위해 부리를 쩍쩍 벌리고 날개를 파닥거리는 단순한 본성. 관심을 거두면 곧 숨이 끊어질게 뻔한 나약한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분투했던 순간을, 나는 종종 힘 없이 닳아져 가는 마음의 불쏘시개로 꺼내어 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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