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의 더 남쪽이라 해도 시골에서 맞이하는 겨울은 유난히 춥다.
미로처럼 얽힌 산 사이에 한 번 바람이 갇히면 마치 고라니 우는 소리처럼 오래도록 시끄럽다. 그 바람 소리에 놀란 외지인들은 해까지 지면 마을엔 아예 얼씬도 하지 않으려 한다. 윗마을에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유골함과 봉분이 들어선 탓이다.
겁 없는 몇몇만 가로등 별로 없는 거리를 큰 보폭으로 걸을 뿐, 이 마을 토박이들도 한밤엔 외출을 꺼린다. 많은 젊은이가 떠나고 이른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노인이 대부분이라 더 그렇다. 작물을 키우고 때가 되면 도로 거둬들이는 일상을 쳇바퀴 구르듯 살아온 그들에게 마을은 변수가 끼어들기 어려운 땅이었다.
이런 곳에 그는 몇 해 전 겨울 이사를 왔다.
키는 백육십 센티미터쯤 되었고 대걸레 자루처럼 말라서는 하루에 마시는 술만 대여섯 병은 가뿐히 넘었다. 노인들 말을 귀동냥하기로는 내 또래의 딸을 두었다는데, 일찍이 아내와 갈라서고 시골 빈집에 홀로 들어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가는 뜨내기가 더러 있는 마을이라 한 사람 보태졌다 해서 마을이 소란스럽진 않다. 그러나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시비가 붙은 윗마을 사람에게 낫을 들고 설친 후엔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경계심이 한층 강해졌다. 토박이도 아닌 그의 편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느닷없는 짓을 한다며 오히려 그를 얕잡아 보았다. 그가 강하게 행동할수록 그랬다. 한밤에 일어난 난동 이후 오래 지나지 않아 더 홀쭉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처음의 기세와 달리 한껏 풀이 죽어 있었다.
그는 우리 가족이 하는 식당에서 자주 외상으로 술을 마셨다. 그가 식당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거름 냄새가 따라왔다. 계산대에 서 있던 손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잔돈을 받아 돌아갔다. 맥주 한 병을 달라며 식탁에 앉는 그에게 맥주와 안주를 내어주던 나 역시 할 일을 끝낸 후엔 잰걸음으로 물러서 참고 있던 숨을 급하게 내쉬고는 했다.
식당에 오는 손님들 절반 이상이 흙투성이 작업자들이었으니 몰골이 험한 건 그렇다 쳐도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돌아야 할 한복판에 썩은 거름 냄새를 풍기는 그가 달가울 리 없었다.
그는 식탁에 앉아 식당 안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그들끼리 주고받는 말 몇 마디에 첨삭을 덧붙이기도 했다. 어쩔 땐 근처에서 일하다 목이나 축일 겸 찾아온 이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호응에 인색하지 않았고 가끔 면박이 돌아와도 입술을 실쭉거리다 할 말을 삼켰다. 그리고는 겨우 얻은 말동무가 떠나갈까 서둘러 술 한 병을 더 외상으로 꿨다. 상대의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워주며 몇 분씩을 더 벌었다.
모두가 일하러 떠난 자리에서 그는 한참을 앉아있다 빈손으로 나갔다. 걷는 방향에 집이 있다는데 식당에서 그와 술잔을 기울이던 모두 그가 사는 집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의 이름 세 글자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드물었다. 김 씨라던가 박 씨라던가, 아니 조 씨였던가. 성씨나 이름을 모르는 그는 그럼에도 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몰골을 하고 거기 존재해있었다. 비둘기색 점퍼, 색이 바랜 비니, 밑단이 헌 펑퍼짐한 바지, 앞코가 닳은 작업화. 그가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옷이 그를 집어삼킨 것 같았다. 따로따로 떼어내 살펴보면 한 벌씩의 옷인데도 막연히 그를 떠올릴 때마다 하나의 덩어리로 그려지고는 했다. 지금도 그렇다. 내게 그는 꾸깃꾸깃하고 끝이 너덜너덜한 알맹이 부실한 보따리 같은 이미지다.
마냥 그를 꺼렸던 것은 아니다. 그는 종종 우리를 도와주었다. 빈 그릇이 수북이 쌓인 쟁반을 불평 없이 들고 가서는 또다시 돌아와 몇 번이나 더 힘을 써주었다. 작은 체구가 빠른 걸음으로 오가는 모습이 고마워 인사를 전하면 별일 아니라는 듯 실쭉 웃으며 먹다 만 술을 한입에 털어 넣고는 했다.
알코올과 거름, 여러 잡내를 풀풀 풍기며 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한 번은 오래 바라봤던 적이 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잠시 쉴 겸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바깥 평상마루에 앉아있을 때 넋 놓고 있던 시선의 방향이 그가 걸어가는 쪽과 우연히 같았기 때문이다.
한낮임에도 꼭 그의 주변만 초저녁 같았다. 그늘이 든 산 밑 모퉁이를 그는 머뭇거리지도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는 일도 없이 부지런히 걸어갔다. 왜소한 몸과 달리 큰 보폭이 그를 금세 보이지 않는 너머로 데려다 놓았다. 마을에 이사 와 유일하게 달라지지 않은 것. 그것은 걸음의 단호함이었다. 지난 그의 삶도 그의 걸음을 닮았던 모양이다. 선택의 순간마다 내린 단호한 결단이 운 나쁜 필연이 되어 결국 피붙이 하나 없는 이곳까지 그를 떠민 것일까. 그 자신에게는 뿌리내리기에 춥고 딱딱한 겨울 땅 같은 타지에서 그는 몇 년을 더 손끝의 가시 같은 존재로 살았다.
”그 사람이 그날 거기에 갔었나요?“
”아뇨, 설 지나고서는 통 얼굴을 못 보았네요.“
어느 날 식당에 걸려온 전화는 뜻밖의 비보를 알리고 있었다. 그의 일가라는 이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술에 취해 발을 헛디딘 모양이라고. 넘어진 곳이 하필 그가 혼자 살고 있던 집 안마당이었다고. 머리를 크게 부딪혔지만 도움 줄 사람이 없어 쌀쌀한 겨울밤 날씨에 그대로 방치되었다고.
그렇게…….
………….
남쪽의 더 남쪽. 낮은 산들이 미로처럼 얽힌 작은 시골에서는 봄이 오기 전 많은 것이 얼어 죽는다.
나뭇가지에서 추락한 새와 고양이와 작은 설치류와 홀로 살던 사람까지. 산 사이에 붙잡힌 바람이 마치 고라니처럼 우는 차가운 겨울 밤중 그것들은 여기저기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린다.
살아서 하얀 입김을 뱉던 많은 숨이 사라진 어느 날, 봄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휑하던 나뭇가지에 매화 봉오리가 움텄고 추운 날 내내 탁한 갈색빛으로 뻣뻣하던 줄기가 유연해지기 시작했다는 걸 문득, 정말 문득 깨닫게 된다. 자신이 오기까지 있던 비보를 죄다 알고 있다는 듯 걸음 소리조차 없이 와서는 여기저기 가만히 서 있다.
조용히 피어난 봄날의 흔적을 따라 걷던 나는 한낮을 마치 겨울 초저녁 걷듯 걷던 그를 떠올린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여기 오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이 뒤늦게 궁금하다. 대답해 줄 사람은 없고, 걸어가는 뒷모습만 길 이곳저곳에 선하다.
그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환한 봄이었던 적이 있을까. 향기롭게 흔들리다 느닷없이 오므라들고 뻣뻣해져 결국엔 꺾여 던져진 한 철 꽃이었을지 모른다. 뾰족한 가지처럼 마르고 썩은 거름 같은 냄새를 풍기며, 그는 자신을 궁금하게 여기지 않는 빈집에서 혼자 시들었다.
오늘도 죽은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많은 이가 윗마을로 향했다. 술 한 잔 기울여야겠다 마음을 먹은 몇이 우리 식당에서 소주를 샀다. 그것만 덜렁 들고 가려기에 냉장고에 있던 과일 하나를 곁들어 주었다. 고맙다 고개를 숙인 이가 서둘러 떠났다. 누가 또 오려나 바라본 입구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없는 길이 있다.
그러나 머릿속에 다시 그려진 저 길을 누군가 걷고 있다.
펑퍼짐한 점퍼 속에 앙상한 몸을 웅크린 그의 보폭은 여전히 크다. 돌아보는 일 없이 걸어가더니 낮은 산모퉁이를 홱 돌아 사라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