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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재 Nov 20. 2024

난 예순 다섯 전에 죽어

친정 엄마와 붕어빵

팥붕이? 슈붕이?

아침 일찍부터 서울에 다녀오느라 지쳐서 차에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부르르 부르르 체머리를 떠는 핸드폰을 바라보니 엄마다. 혈압과 당뇨로 식이조절과 운동에 열심이신 엄마가 이 계절이면 절대 거르지 않으시는 것, 바로 붕어빵이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엄마가 먼저 붕어빵 핫플을 훑으며 배달을 해주신다. 그러면서 늘 내가 아직 살아있어서라고 덧붙이신다. 우리 엄마는 늘 이야기했다. 난 예순 다섯 전에 죽을 거야. 저게 딸한테 할 소린가. 어느 스님이 우리 엄마의 수명은 예순다섯까지라고 했다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은 지 이십 오 년쯤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 즈음부터 우리 엄마는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본인의 운명을 이야기했다. 어느 날인가는 서류를 들고 오시더니 나와 동생에게 내미셨다.


그냥 땅에 묻혀 썩는 것보다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해. 요즘 큰 스님이나 신부님, 목사님들도 다 하신다더라.


뭐야, 이건 또. 시신기증동의서? 지금의 기준으로 그건 명백한 청소년 학대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아이들이 부모의 선한 영향력을 받아 사회적 의미를 배운다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시대적 배경으로 봐도 그건 너무 무리수였다.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였던 동생은 "어떻게 이런 걸 우리한테 줘!"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갔다. 아빠는 기가 차서 소주를 드셨다. 이런, 나는 타이밍을 놓쳤네.


내가 출산하자 엄마는 늘 '죽기 전에 내 손주를 잘 키워야 한다'며 정성을 다하셨다. '살 날이 정해진' 외할머니로서 전투적인 자세로 좋은 할머니 되기에 몰입하시더니 나보다 더 엄마 같은 할머니가 되려 하셔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어른의 관심, 할머니의 품은 감사하지만, 나처럼 엄마 껍데기를 스스럼없이 벗지 못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아빠를 닮은 아이는 공감보다는 분석에 강했고, 할머니의 온갖 정성에도 시크하게 반응하는 베이비였다.


그래도 시간을 이기는 건 없다. 외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은 아이에게 스며들어 아이는 눈이 오면 친정 엄마 손을 잡고 매번 "부어빵! 부어빵!"을 사러 가자고 했다. '엄마는 아냐아냐'라며 꼭 친정 엄마 손을 잡고 나서는 아이는 나이답지 않게 슈크림보다 팥소가 들어간 붕어빵을 좋아했다. 그 당시 친정 동네에는 인심 좋은 어머님이 붕어빵집 사장님이셨는데 천 원에 5개를 담아주셨다. 천 원 한 장이면 팥팥팥슈슈를 담아 올 수 있었던 그 시절, 매번 엄마는 '내가 살아있어서', '내가 살아있을 때'를 반복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를 눈으로 들으며 붕어빵을 씹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11월을 머금어 흐릿하다. 내가 엄마에게 예순다섯이 무사히 지나갔음을 이야기하던 날도 이런 날이었다.


엄마, 이제 예순여섯인데?
그러게, 살아있다, 야.
엄마, 내 곁에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내년에도 있을 것 같아?
그러게, 지금 봐서는 죽을 것 같지는 않다, 야.


멈춰 선 자리 곁 도심의 카페에서도 팥붕이와 슈붕이를 팔고 있다. 너희들은 냉동실 출신이지? 나의 사랑하는 엄마는, 전통 시장에서 갓 구원진 큼직한 팥붕이와 슈붕이를 낚아서, 눅눅해질 세라 쏜살같이 오고 계신다고.   

예순다섯을 넘긴 엄마는 그 후 공부를 하시더니 요양보호사로 일하기 시작하셨다. 그 오랜 기간 전업주부로 아빠 눈치 보인다며 전전긍긍하시더니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엄마는 강했다. 남들이 다 '그 나이에 무얼'이라는 편견을 넘어 끝내 취업이란 걸 해내시고야 만 것이다.


더 일찍 시작하셨으면 어땠을까. 그 말을 안 하고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다. 나는 엄마 곁에서 살았지만 내가 차마 다 알 수 없었던 그 내면의 폭풍을 겪어내며 엄마는 나름의 준비를 하신 걸 거다. 정말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를 삶에 대한 불안감, 본인 없이 저 어린것들이 어찌 살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몇십 년 뒤라 해도 면전에 다가와있는 듯한 마지막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것이었나 싶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너와 잘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나와 함께 자라난 거겠지. 엄마와 내가 함께 보낼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겨울에도 허락하는 날마다, 따끈한 팥붕이 슈붕이를 엄마와 마주 보고 정말 맛있게 먹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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