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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pr 08. 2024

소년이 사는 메타

선택받은 소년과 잔혹한 창조자




  도시의 한가운데 커다란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A의 안내장이었다. A는 가끔 중요한 공지사항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소년은 도시를 걸으며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안내장은 뭐랄까 왠지 좀 성의가 없어 보였다.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뭐 하냐? 어디냐?' 어디선가 통통 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의 친구였다. 그리고 그는 소년의 어깨를 쳤다.



  '서울 배경이야.' 소년이 답했다.



  '서울이 뭐가 좋아. 나는 복잡하던데, 나는 목장이야.' 친구의 웃음소리가 소년의 세상에 비집고 들어왔다. 소년이 친구에게 집중하자 친구의 모습이 뚜렷해졌다.



  '목장이 뭐가 좋아. 아무것도 없는데.' 소년은 친구를 보며 말했다.



  '소 있어. 소. 얼마나 귀여운데. 너도 와' 친구는 말에 리듬을 실었다. 잔뜩 신난다는 그만의 표현 방식이다. 친구의 말에 소년이 미소 지었다.



 소년의 친구는 소년과 다른 배경을 보고 있지만 서로를 보고 만질 수 있다. 상대방에게 집중하면 그들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고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만약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면 새로운 사람들과도 교류할 수 있다.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환경을 조성한 설계자 A 덕분이다. 타운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각자 원하는 세계를 여행한다. 그리고 다양한 퀘스트들을 깨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응.' 소년이 답했다. 그리고는 친구와 같은 배경 공유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갑자기 소년은 엄청나게 많은 소 떼에 둘러싸였다. 그는 깜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소들은 소년이 신기한 듯 주변에 모여들었다. 소들이 소년을 쳐다보며 둘러쌌다. 소년은 엉덩이를 짚은 채 소들을 올려다보았다. 통증은 없었다. 둥글게 모여 소년을 바라보는 소들의 눈망울들이 초롱초롱 빛났다. 소년의 친구가 까르르 웃었다.


 

  '웃기니?'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소년이 심통 난 듯 말했다. 그러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소들의 고개가 소년을 따라 올라갔다. 



  '웃기지.' 소들 사이를 헤치고 나온 소년을 보며 친구가 웃었다. 친구가 양팔을 벌려 소년을 안았다. 그리고는 다시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여기서 웃을 일이 몇이나 되겠냐. 나는 너만 보면 재밌어.'라고 말했다. 그의 웃는 표정 사이에서 소년은 약간의 우울을 읽었다. 



  '좀 걷자.' 소년이 친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좋아.' 친구가 답했다. 그리고 친구는 양쪽으로 뜀뛰기를 하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소년은 원래 살던 세상보다 '유토피아'에 더 재밌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메타에서 지낸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어느 정도 자란 뒤에 메타 적응 교육을 받았지만 소년은 가끔 태어나서 자란 곳이 여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의 기억들은 희미해져 날아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고 싶어 했다. 이전의 삶이 많이 행복했던 사람들이 그랬다. 소년의 친구도 가끔 저런 말들을 했다. 웃을 일이 없다던가. 다 떠나고 싶은데 통 안에 들어있는 쥐가 돼버린 것 같다던가. 소년도 때로 파도치는 그리움에 어쩔 줄 몰랐다. 무엇을 향한 그리움인지는 모두 잊은 채.



  친구가 한참 앞서 폴짝폴짝 뛰다가 멈춰 섰다. 그러더니 확 뒤돌아서 말했다. '홀로그램 봤어? 대박 퀘스트던데, 우리 어차피 상위 서버에 진입하는 건 어려울 텐데 그것도 보상이고. 게다가 얼굴 완전대칭 조건? 그건 그냥 이곳에서 왕 노릇하며 살 수 있어..' 그는 상기된 얼굴을 한 채 신난다는 듯이 조잘거렸다.



  그러자 친구의 손목에 찬 시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진정하라고.' 소년이 말했고 친구는 후후 숨을 쉬었다. 숨을 쉬어도 바람이 나가지는 않는 세상이지만. 친구의 밝은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렸다. 소년은 문득 두 사람의 외모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금발 머리의 친구는 직모의 단발머리였다. 찰랑이는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릴 때면 소년은 가끔 그 머리를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소년의 검은 곱슬머리는 머리통에 착 붙어있었다. 또 친구는 자그마한 체구에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듯 항상 통통 튀었지만 자신은 삐죽하게 큰 키에 느릿느릿 움직인다는 점도 차이였다. 소년은 종종 바깥세상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생겼었는지 궁금했다. 가끔 소년이 이 물음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런데 관심을 갖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것이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지? 싶었지만 소년도 어느새 "유토피아"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친구가 어느새 소년 앞으로 다가와 툭치며 물었다.



  '아, 퀘스트. 초대장을 받아야 된다잖아. 내용도 너무 없어서 불안해.' 소년은 대충 퀘스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불안할게 어딨어. 이제까지 같이 깬 퀘스트가 몇인데. 난 진짜 하고 싶어. 상위서버로 가서 동생이 있나 찾아보려고.' 친구가 진정하라는 듯 말했다.



 '동생 아직도 못 찾았어? 가족들은 보통 같은 서버에 배치해 주잖아. A와 대화하기에 얘기해 봐.' 소년이 갸웃하며 친구에게 말했다. A와 대화하기는 일종의 민원창구 같은 곳인데, 서버에 상주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A가 중요도 순으로 처리해 주는 식이었다.



  '왠지 모르겠어. 답장도 안 와.' 친구가 울상 지으며 말했다.



  'A가 혼자 이것저것 서버를 보수해서 그런가. 늦게라도 답이 올 거야.' 소년은 친구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친구의 올리브색 눈에 눈물이 맺혔다. 친구는 밝다가도 가끔 울었다. 소년이 친구를 토닥였다. 하지만 이내 손목시계에 경고등이 울렸다. 친구는 포기한 듯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점점 거칠게 울었다.



  '나중에 봐.'이 말을 끝으로 친구가 흩어졌다. 집에 격리된 것이다. 집은 오롯이 홀로 쉴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때로는 감옥의 독방 같았다. 진정될 때까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규칙은 왜 만들어진 걸까? 소년은 늘 궁금했다. 하지만 이곳의 체제에 대한 물음은 터부였다. 모든 것이 허구라는 진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룬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허무로 전염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경계한다. 소년도 그랬다.



  소년은 다시 서울을 배경으로 도시를 걸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은 홀로그램 얘기뿐이었다. '첫 번째 초대장은 누가 받을까?' '난이도가 어떨까?' '너무 좋은 보상안이니 아주 어려운 일을 완수해야 하는 건 아닐까?' '꼭 참가하고 싶은데 첫 번째만 아니면 좋겠다.'



  걷는 중에 아는 얼굴들이 지나갔다. 복잡한 배경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때로 소년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아도 다시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모두가 똑같이 공유하는 일상은 특정 시간에 집에 가서 쉬는 것뿐이다. 우리네가 사는 집을 외부에서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소년은 바둑판 한 칸 한 칸에 사람 하나하나가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만 할 뿐이었다. 상위 메타의 사람들은 장기판 한 칸 한 칸에 살고, 그 위는 탁구대, 그 위는 테니스 코트, 그 위는 축구장일까? 소년은 다른 메타에 사는 이들은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했다. 그들은 독방에 갇히더라도 뛰고 날 수 있을까? 그들도 퀘스트 관련 홀로그램을 봤을까? 봤다면 관심을 보였겠지. 바둑알이 장기알 되는 것보다 테니스 코트가 축구장 되는 게 더 클 테니. 왜 A는 세상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았을까?



  소년의 시계에 알람이 울렸다.



  '퀘스트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집으로 소환합니다.'



  어떤 배경화면을 보고 있든 간에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었다. 모두의 관심이 쏠릴만한 주제의 소리는 모두의 귀에 들어갔다. 그들의 시야에 퀘스트 초대장을 받은 소년이 보였다. 소년의 시야에도 모든 사람들의 이미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천 개의 눈알이 소년에게로 향하는 것 같았다.



  '왜 쟤야?' 누군가 말했다. '랭킹이 높은 것도 아니고 평범한 친구인데.'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소년의 눈앞이 흐려졌다. 소년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년은 이 퀘스트의 첫 번째 도전자였다. 세부내용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퀘스트에 도전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년을 부러워했다. 그들도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니까. 그간 메타에서 사는 유저들의 정보들을 기반으로 메타 창조자가 함수를 돌려왔다. 그는 필요한 유저에게 필요한 퀘스트를 제공했다. 형식적으로 다양한 타입의 퀘스트에 참여 수요조사를 하고는 있지만, 사실 어떤 알고리즘이 있다고 알려졌다. 메타 창조자가 정하는 방식에 따를 수밖에 없다지만 사람들은 쉬쉬하며 재미있는 퀘스트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했다. 



  메타 창조자로 불리는 A는 사람들을 돕는 이다. 처음 '유토피아' 유저들이 이곳에 떨어졌을 때 적응을 돕고, 공간을 하나하나 창조하고, 보수하고 돌보는 자. 그가 메타 창조자 A다. 하지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 그는 유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소년은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홀로그램이 떠올라있었다. 홀로그램 속 인물은 언제가 본 적 있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남자였다. 창조자 A였다. 소년의 기억과는 조금 다르게 A는 선한 눈매를 가졌다.



  “거울 공장까지 혼자 이동하고, 거울에게 주문을 외우면 된단다. 이 퀘스트의 보상은 알려진 것과 같이 황금비율로 외모를 바꾸어주는 것이다. 그 의미가 미적인 아름다움 뿐이 아니야. 그러니 지금 포기해도 좋아. 참여하고 싶다면 주문을 알려줄게.” 소년은 다른 퀘스트들과는 다르게 왠지 A의 설명이 너무 길다고 느꼈다. 



  소년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완벽한 대칭과 황금비율을 이룬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이내 마음을 굳혔다. “주문을 알려주세요.” 소년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년의 말을 들은 A의 얼굴이 왠지 쓸쓸해지며 말했다. “건투를 빕니다.”



  홀로그램은 A의 모습에서 미션게임 설명서 및 동의서로 이동했다. 소년은 여러 항목에 동의했다. 손으로 동의 버튼을 눌러도 되지만 머릿속으로 "Yes, Yes" 생각만 하면 버튼이 눌렸다. 처음 이 교육을 받을 때는 어색했지만 몸을 쓰지 않고 생각만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주 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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