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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pr 05. 2024

거울상

SF 소설 거울상


거울공장의 소년 





  좌우가 정확히 대칭일수록 얼굴은 아름답다. 황금률과는 관계없이 대칭의 얼굴을 가진 자를 보면 이곳의 사람들은 선망 어린 시선을 보낸다. 좌우로 뻗은 얼굴의 프레임, 뚜렷한 이목구비가 좌우로 아름답게 대칭을 그리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과 태도는 차후에 생각할 문제이고, 대칭으로 아름다운 얼굴을 갖는다면 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성격까지도 완벽하다 망상한다. 언제고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실망하겠지만, 그전까지 우리는 대칭인간들을 열망하고 존경하고 사회의 가장 높은 곳에 세운다.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도 그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양쪽 얼굴을 똑같이 나누어주는 거울이 있다. 원하는 유저는 모아둔 돈을 내고 일정을 예약한 뒤 거울 공장으로 간다. 누구나 재화를 지불하면 아름다운 얼굴을 가질 수 있다. 사회적인 신망은 무시할 수 없는 덤. 마을에서 거울 공장으로 가는 길은 왠지 설렌다.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은 시원한 산들바람이 분다. 색색의 꽃들은 계절마다 바뀐다. 일정하게 계산된 바람에 꽃들은 정확한 각도로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모든 것의 계산은 복잡해서 마치 무질서해 보인다. 유저는 가는 길에 듣고 싶은 좋은 노래를 듣거나, 춤을 추고 벤치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볼 수 있다. 소년은 식욕과 성욕, 수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에는 이미 관심을 끈 지 오래이다. 소년은 평소에도 음식을 탐미하거나 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욕망이 없다면 모든 것이 평안하다. 하지만 꿈도 꾸지 않고 무인 상태로 돌아가는 듯한 수면은 제법 즐긴다. 그냥 소년 자신, 본연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잘나고 싶은 욕심을 영영 지워버리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점점 풍경이 흐려진다. 이곳에는 다양한 맵이 있다. 주민들은 미스터리 한 퀘스트를 다양히 경험한다. 때문에 소년은 두렵지 않다. 꽃들의 모양은 흐려졌다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빨강, 노랑, 주황, 분홍의 꽃들은 신비롭다. 풍경에 매혹되어 도착한 곳에는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왠지 어디 다른 맵에서 복사 붙여 넣기 한듯한 짙은 남색의 건물이 있다. 소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렸다. 깡통인간의 머리만 대충 떼다 얹은 듯 삐걱이게 생긴 건물은 어둡고 색이 푸르댕댕했다. 주변의 명도나 채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거울 공장으로 들어가는 남색의 문은 철제의 광택이 났고 먼지 한 톨 없었다. 손잡이는 오래되었다. 이곳에서 오랜 것과 젊은것의 의미는 중요치 않지만. 그곳은 껍질이 벗겨진 듯 누렇게 오렌지 빛을 내고 있었다. 오랜? 오렌? 누군가가 대칭의 얼굴이 될 때 지나간 문일까?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어떤 동상은 반짝거린다. 소원하는 만큼 동상을 만져대기 때문이다. 소년의 기억 저편에는 어떤 동상의 구두굽을 여러 번 만지작거리며 빌었던 소원이 있었다. 떠올리려 하면 그 기억은 흐려졌다. 여기 사람들은 예전 기억이 스르륵 흘러들었다가 흩어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거울아 거울아 내 얼굴을 아름다운 대칭으로 만들어 주겠니?” 거울 앞에서 소년이 되뇐다. 기대에 찬 목소리.



  “거울아 거울아 내 얼굴을 아름다운 대칭으로 만들어 주겠니? 거울아 거울아 내 얼굴을 아름다운 대칭으로 만들어 주겠니? 거울아 거울아 내 얼굴을 아름다운 대칭으로 만들어 주겠니?” 말간 얼굴의 그는 퀘스트를 시작하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뇐다. 진하게 쌍꺼풀 진 눈에 힘이 들어갔다. 두꺼운 눈썹 사이의 미간에 두어 개의 주름이 갔다. 소년은 아랫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윗입술로 꼭 덮어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온몸에 힘을 주고 서 있었다. 기대감으로 소년의 심장이 두근댔다. 이내 소년의 시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과각성 상태입니다. 안정을 취하세요. 불가능하다면 집으로 소환합니다.'



  '60. 59. 58. 57. 56. 55....'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소년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속으로 평온한 마을의 이미지를 그렸다. 



  심박이 정상 수치로 돌아갔다. 이윽고 그는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약간 괴상해 보인다. 검은 공간에 체크무늬의 바닥이 깔려있었고 앞에는 붉은 버튼이 있었다. 인테리어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듯. 그의 앞에는 '시작'이라고 적힌 버튼이 있었다. 소년은 방을 한 번 더 둘러보고는 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소년이 디딘 땅이 스르르 사라졌다. 땅에서 나오던 아주 작은 빛들의 모음에서 빛이 하나씩 꺼지는 것 같았다. 소년은 주위의 공간감을 느낄 수 없는 검은 공간에 있었다. 깊은 밤 어떤 꿈을 꾸다가 문득 깨어보니 주변이 캄캄한. 그런 느낌이었다. 



  ‘공간을 이동하는 퀘스트는 쥐약인데.’ 



  소년은 이런 식으로 공간이 다른 메타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에 약간의 멀미를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고 하던데 유독 소년과 같은 시기에 '유토피아'에 입주한 사람들이 그랬다. 주로 젊은 남자들이었다. 몇 초간의 지연 상태가 지났다. 주변의 아득한 검은색이 손에 잡힐 듯한 검정으로 변하며 빛을 내었다. 그리고는 작은 방에 도착했다. 방안에 는 몇 개의 조명이 켜져 있었다. 조명이 만드는 빛은 물결치듯 일렁였다. 정육면체의 방은 다섯 면이 보라색 벽, 한 면이 거울이었다. 짙은 보라색의 벽지에는 작은 무늬들이 그려져 있었다. 무늬는 꽃과 나무, 천사들이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거울에 소년이 있었다. 퀘스트의 시작이 되는 말을 외쳐야 했다. 소년은 자꾸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소년은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과각성 상태 경고창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두근거린다는 것은 사실상 관념적인 표현이다. 소년에게는 두근거릴 수 있는 장기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이곳에서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정신적인 활동수치가 올라갈수록 '유토피아'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므로 시스템은 그들에게 침착해질 것을 요구한다. 다만, 그들이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모든 표현은 가장 인간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정신 활동수치가 높아졌다는 말 대신 심장박동이 올라갔다던가. 심박이 올라가면 그들은 개인의 "집"으로 격리되어 안정을 취한다. 소년은 집으로 격리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진행하는 탐험을 계속하고 싶을 뿐. 양쪽 얼굴이 대칭인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싶을 뿐.



  시계에는 초록색 배경의 알림이 그려졌다.



  '퀘스트를 시작하세요.' 소년의 얼굴이 안도한 듯 편안해졌다. 그는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그의 키는 큰 편이었다. 그가 허리를 쭉 펴자 그의 까무잡잡한 얼굴에 순간 빛이 비쳤다. 소년은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거울아 거울아 내 얼굴을 아름다운 대칭으로 만들어 주겠니?” 소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대칭인간으로 사는 세상은 어떨까 궁금해서 퀘스트를 수락했다. '원래도 재미있게 잘 살고 있었는데. 괜히 왔나, ' '하지만 영원히 평화로운 삶은 지루하니까 변화도 필요하지.'  



  벽을 가득 채웠던 거울이 소년의 얼굴과 양쪽 어깨정도를 담을 정도로 작아졌다. 소년의 등 뒤에 거울이 생겨났다가 머리 위 천장과 바닥에 거울이 또 생겨났다. 그리고 공간 전체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작아지는 공간이 각각의 거울에 서로 비쳐 무한히 늘어났다. 슈웅 크기가 줄어든 때 블랙홀이 주변을 빨아들이듯 어떤 점으로 다른 점들이 빨려갔다. 하지만 그 공간은 작아지는 동시에 무한히 늘어나는 듯했다. 인위적인 조작에 소년은 멀미를 느꼈다. 줄어든 거울 주변으로 거울을 감싸는 조각들이 새겨졌다. 식물과 이 파리와 꽃망울들이 거울 주변을 감쌌다. 거울의 위쪽에는 작은 천사모양 조각이 들어갔다. 벽지에 그려져 있던 그림들이었다. 양각의 조각이 거울을 감싸며 튀어나왔다. 



 '이번만 넘기면 새로운 세상이야.' 소년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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