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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pr 15. 2024

거울공장의 소년

SF 단편소설 거울상

거울과 거울에 비친 거울들의 영원한 공간 속에서 거울과 거울이 맞닿은 부위에는 이따금씩 천사와 꽃과 식물의 조각상이 피어났다 사라졌다. 그것들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움직이는 듯했다. 거울을 바라보던 소년이 입을 달싹였다.



  '거울아 그.' 소년이 말을 꺼냈지만 약간 망설이는 듯 문장을 끝맺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때 거울이 말한다. '어떤 공간에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절반을 가져오는데 동의합니까? 한 번 거울을 사용하면 다시는 거울을 사용할 수 없고, 다른 이에게 거울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없습니다.' 거울의 목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차분했다.



  절반을 가져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소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입을 다물고 있는 그의 앞에 카운트 다운이 떠올랐다. 10, 9,...



  소년이 카운트 다운을 보고 마음이 급해진 듯 말했다. '.. 네. 동의합니다.'



  '시도도 못해보고 쫓겨날 수는 없으니까.' 소년은 혼잣말로 되뇌었다. 시스템은 때론 상냥하지 않아서 부가조건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 퀘스트가 그냥 끝나버리는 때가 많았다. 그런 것 들은 다 중요한 퀘스트가 아니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설명받은 대로 대칭으로 맞추어 준다는 얘기겠거니.



  '퀘스트에서 실패하면 패널티를 얻게 됩니다.' 거울이 말했다. 그때 문득 소년은 A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 보다 아주 먼 예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는 그 자신을 엔지니어로 소개했고 퀘스트에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지를 알려주었다. 중요한 결정은 늘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도. 하지만 퀘스트 역시 그가 설계한 것이라 대부분은 굳이 따져볼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안전한 '유토피아'. 문득 불안해진 소년은 이것 역시 굳이 의심할 필요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거울이 말했다. '빛이 당신의 얼굴 중앙을 지날 때 박수를 치고 그를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 중 한쪽을 고르면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거울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울의 왼쪽 모서리에서 수직으로 죽 그어진 레이저 같은 빛이 나왔다. 그 빛은 천장에서 바닥까지 이어졌다. 천장과 바닥은 끝없이 이어져 빛도 끝없이 뻗어나가는 것만 같았다. 거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빛이 만드는 베일듯한 면이 소년을 향해 고개를 뻗는 듯했다. 왼쪽에서부터 소년 쪽으로 다가오는 빛을 향해 소년이 손을 뻗었다. 빛은 소년의 손가락에서 몸 쪽까지 서서히 지나고 있었다. 소년은 별다른 느낌이 없음이 의아했다. 빛은 주저하지 않고 그를 훑으며 움직일 뿐이었다.



  미션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할 새도 없었다. 빛이 얼굴의 중앙을 지날 때 박수를 치면 된다. 그것만이 소년의 머리에 깊게 박혔다.



  '할 수 있어.' 소년이 양손을 꼭 쥐며 말했다.



  빛이 몸을 지날 때 아프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소년은 자신감이 좀 생겼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박수만 잘 치면 된다, ' '박수만, ' '박수.'



  빛은 그의 어깨 끝에 닿았다. 소년은 손뼉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이저 기둥이 마치 스캐너 불빛 같이 소년의 뺨에 닿았다. 빛은 차츰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소년의 도드라진 광대를 지났다. 소년의 커다란 눈에 빛이 지날 때 소년은 맨눈으로 태양을 보듯 눈이 쨍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소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짧은 순간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던 시선이 떠올랐다. '왜 쟤야?'라는 물음 어린 그들의 시선과 눈을 맞추듯 그는 자신과 눈을 맞추었다. 빛이 소년의 코로 다가왔다.



  짝 -!



  소년이 손뼉 쳤다.



  빛은 정확히 소년의 미간을 콧망울을 턱 끝을 일직선으로 지나고 있었다. 소년은 왠지 모를 두려움에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윽고 빛이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자리. 소년에게는 세로축으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왼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오른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오른쪽' 소년이 말했다. 그는 조금 더 매끄러운 오른쪽 얼굴이 더 황금비율과 잘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건가요?' 소년이 물었다. 왠지 얼떨떨했다. 무언가 변한 건가 정말로? 빛이 눈부셔서 고개를 돌렸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우주선에 있다는 사람은 뭐지? 고민하던 소년의 얼굴이 지지직거리더니 오른쪽 얼굴이 양쪽으로 대칭된 모양으로 변했다. 이목구비의 위치도 미묘하게 재조정되었다.



  소년이 거울에 바싹 다가가 얼굴을 보았다. 거울에는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소년의 뒤로는 소년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는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이 대칭인지, 뒤쪽에 있는 거울에 반사되어 거울 속에 있는 거울의 얼굴이 대칭인지 또 그 안의 거울은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안쪽까지 파보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여기에 적응해야지.' A가 언젠가 말했다. 아주 과거의 소년에게 그는 적응을 위해 또래 친구들도 소개해주고 적응을 위해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학습도 시켜주었다. 소년은 A에게 많이 의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이나 소일거리들이 많이 생겼다. 유저들의 숫자도 늘어나는 것 같았다. 서로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세계를 탐험했다.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모두 A를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년은 얼른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바뀐 모습을 뽐내고 싶었다. 거울을 보던 소년의 눈앞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미션 완료'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다음번에는 '나가기' 버튼이 나왔고 그는 거울 공장을 나왔다. 공장의 밖으로 걸어 나오는 그의 얼굴은 대칭으로 매끈했다.

  


  '와. 예쁘다.' 사람들은 소년을 보며 말할 것이다. 그런 상상이 소년의 머릿속에서 재현되었다.




  소년의 앞에 작은 소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와. 너 참 예쁘다. 거울공장 퀘스트에 성공한 걸까?' 소녀가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 올리브색 눈동자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소녀는 삐딱하게 기대앉은 채 조그만 손가방을 팔목에 걸고 빙글빙글 돌렸다.



  소년은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가 무언가 말하려 할 때마다 일시정지되듯 그가 멈추었다. 소녀가 멈춘 그를 자세히 보려 일어섰다. 소년의 목은 지진 듯이 아팠다.



  '퀘스트에 락이 걸려있나 봐. 완료한 사람들은 말 못 하게. 아무튼 축하해.' 소녀가 웃으며 말했다. 



  '넌 여기서 뭐 해?'라는 물음은 소년의 입 밖으로 나와 소녀에게 전달되었다.



  '퀘스틀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지. 나도 성공하면 좋겠다.' 소녀는 동경의 표정을 지으며 폴짝 뛰었다.  그리고는 신나는지 소년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다. 그 애는 쭈글쭈글하게 생긴 조그만 가방을 이제 오른쪽 팔을 빙빙 돌려가며 휘둘렀다. 가방과 같이 흔들리던 조그만 가죽장식이 뚝 떨어져서 소년 뒤쪽으로 날아갔다. 장식이 떨어지자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은 가죽 장식을 주워주려다 '됐어. 의미 없어.'라는 소녀의 말을 들었다.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거울공장으로 곧장 사라졌다. 



  '뭐야.' 소년이 가죽장식을 든 채 말했다. 까만 가죽은 종이접기를 한 듯 접혀있었다. 동물 모양이었다.



  '좀 기다릴까?' 소년은 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댔다. 하지만 이내 소년은 거울 공장을 한참 바라보다 마을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길의 끝에는 마을로 가는 문이 떠있었다. 걷는 중에 소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런 퀘스트는 굳이 걔한테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충분한 걸 뭐.'



  소년은 소녀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갈대밭 같은 머리칼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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