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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원GONGWON Dec 27. 2020

2020년 12월 넷째 주.

그저그런일주일_1



1.

어느덧 2020년 12월이 저물어간다. 한 해를 되돌아봐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손에 꼽는다. 똑같은 일상에 젖어드니, 무언가 꺼내볼 만한 일들이 줄어든다. 꼭 슬픈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무탈하게 왔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


2.

집에 들어와 바깥세상을 벗어던지고 TV 앞에 앉는다. 저녁을 먹으며 세상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는 이것조차 벅찬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며 산다는 것은 실로 고된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운동하든, 글을 쓰든 무언가을 하는 사람들이 그저 존경스럽다.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져들어 사는 나를 돌이켜본다.


3.

우리 집은 복도식 아파트다. 내가 있는 곳은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과 맞닿은 곳이다. (한쪽 방 채광은 포기하고 산다.)

덕분에 내가 있는 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택배기사님, 배달기사님, 흡연욕구를 해소하러 비상계단을 드나드는 몇몇 이웃들. 계단운동 열풍에 힘입어 매일 계단을 드나드는 여사님. 그들의 발자취, 엘리베이터 여닫는 소리와 가까이하며 산다.

어떨 땐 은근하게 무서울 때가 있다. 심야시간 문 앞에 도어록 버튼을 누르고 있을 때, 갑작스레 비상구가 열릴 때가 있다. (문이 오래돼 바람이 불면 슬쩍 열린다.) 불현듯 낯선 사람이 나를 습격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얼른 문을 여닫을 때가 있다. (20대 독거남도 어둑한 복도와 갑자기 열리는 비상구는 무섭다.) 도어록 걸쇠를 잠그고 나서야 '나 같은 걸 누가 잡아가겠어' 라며 안도한다.

그럼에도 외부와 개인의 영역이 문 하나로 나눠지고, 문이 열리면 경계가 사라지는 잠깐의 모호함을 생각하면, 집도 과연 안전한 곳일까.


4.

친구에게 카톡 메시지 잘못 보냈다가 얼른 해명했다. 메시지 하나도 기록이 되는 이 무서운 시대, 메시지 하나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나임에도, 무의식적인 말 한마디에 아차 할 때가 있다. 삭제 기능이 생겼지만, 괜스레 의구심만 더 생길 뿐이다. 요즘은 입 못지않게 손꾸락도 조심해야 하는 시대다.


5.

떠나가는 자의 뒷모습은 어떤가.

한직으로 물러가는 상사의 모습. 자기 쓰임새가 소멸했다는 상실감에 휩싸여있다. 모시던 상사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에 나 역시도 마음이 아프다.

작년에 한직으로 떠난 타 팀 상사가 떠올랐다. 떠나간 부서에서 보자며 퇴근길에 나선 상사의 모습이 기억난다. 왠지 모를 기시감이 생긴다. 내가 만일 직장생활을 계속한다면, 나의 마지막은 어떠할까.


6.

크리스마스 연휴 첫날 아침,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맛보려 배달앱을 켜본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배달앱은 구세주다.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에 이불속에 웅크린 채 배달음식을 기다리는 일은 행복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터치 몇 번(과 신용카드)만으로 원하는 것을 보내주는 자본주의의 단맛에도, 1인 가구에게 '최소주문금액'은 곤욕스럽다. 단품 메뉴 하나를 먹기 위해 1인 푸짐 메뉴를 주문하거나 단품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한다. 여기에 이 엄동설한에 집 앞까지 오시는 배달기사님의 노고도 포함된다. 이렇게 몇 번 주문하다 보면 한 달 식비는 내 몸무게만큼이나 늘어난다.

 나는 배달앱을 꺼버리고 롱패딩을 입는다. 빵집에 가서 샌드위치와 빵을 산다. 잠깐의 다리 시림을 참으면 식비를 절약할 수 있다. 최소한 배달팁 분의 노동을 했다는 것에 '내가 그래도 쓸만한 인간이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낀다. 엄마 찬스를 써서 산 네스프레소 버츄오로 커피를 내리며, 샌드위치 포장을 뜯는다. 냠.


7.

내일이면 12월 마지막 주다. 조용히 마무리했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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