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오랜만에 개성공단을 화두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전공하면서 운 좋게도 한창 개성공단이 활발히 운영되었던 시기에 초창기부터 개성공단에서 사업체를 운영하시던 분들과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에피소드들을 생생히 전해 듣게 됐는데요.
차차 말씀드리겠지만, 그중에서도 북한 노동자 분들의 기술 습득과 숙련화 속도가 남달랐다고 합니다. 한 사례로 당시 개성 시내 장마당에서는 개성공단에서 제작한 옷이 거의 흡사한 디자인으로 거래되었다고 하는데요. 개성공단 숙련공분들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아예 의류제품 디자인을 통째로 암기해서 공단 밖에서도 여건이 허락하는 수준에서 바로바로 만들어낼 수 있었고, 그래서 개성만큼은 남한의 최신 의류 디자인이 함께 유행을 탔었다고 합니다.
최근 미국의 숙련 인력 부족과 물류 대란 기사들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거 북한의 개성공단 숙련 노동자분들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미국 등 서방 국가들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일을 할 사람을 찾기 어려워 항만, 공장, 광산이 마비되었고 생필품 및 공산품 공급 대란까지 발생한 데다가 최근 캐나다와 미국 워싱턴주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까지 겹쳐서 설상가상의 상황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는 결국에는 중국 경제가 미국을 추월하는 것을 막기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더 생길 수밖에 없을 텐데요.
미국 입장에서는 주요 공산품들을 중국이 아닌 새로운 시장에서 수입하고 싶겠지만, 동남아시아는 인프라나 숙련화된 인적 자원이 여전히 부족하고 인구증가와 환경오염의 우려가 있는 데다 군부쿠데타 등의 불안정한 상황인지라 부적합한 실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도나 아프리카, 방글라데시와 같은 남아시아권 국가들도 역시 고속도로나 항만과 같은 인프라 자체가 미비해서 중국의 공산품 공급망을 대체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이나 일본, 대만과 같은 동아시아 선진국들은 인건비가 너무 높은지라 저임금・고효율의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생산 대안지가 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생산 대안지로서 북한은 어떨까요? 과거 80년대에 미국은 일본이 급속하게 경제 성장을 하자 이를 막기 위해서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환율 합의를 맺는 동시에 한국으로 공급망을 돌렸던 적이 있습니다. 비슷하게 미국이 중국의 공급망을 대체할 수 있는 곳으로 북한을 선택한다면 문맹률이 높고 인프라가 열악한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공산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이미 지난 16년간 개성공단에서 맺었던 결실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 전역에 개성공단과 같은 산업단지들에서 중국을 대체할 노동집약적 공산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남북한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국제정세 지형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이런 생각이 그저 꿈일 뿐일까요? 만일 현재 세계 최대의 물류 대란을 겪고 있는 동북아와 미국 LA의 롱비치 터미널을 연결하는 항로를 대체할 수 있는 철도길이 북한과 러시아에 생긴다면, 그리고 한국, 북한, 극동러시아,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를 연결하는 물류루트까지 만들어질 수 있다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미국 국내 공산품 공급망이 생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중 패권 갈등이 격화되는 지금이 그래서 어쩌면 북한에게도, 한국, 러시아 미국 모두에게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당장의 현실은 어렵지만 그래도 기대감을 품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