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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 A MI Nov 15. 2020

'퇴근 후'를 그립니다.

1일 1 그림, 때때로 퇴근길이 담겨 있습니다.

.


하루의 손톱만큼이라도 온전히 마음에 들 수 있다면


하루의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부분이라 함은 하루의 90% 정도랄까.


정신없고 느릿느릿 지나가는 오전, 점심 후에 잠시 정체되어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덧 빠르게 지나가는 오후, 그 시간 속에서 '하지 말걸', '이렇게 할' 하는 후회와 짜증 그 언저리 생각들이 늘 겉돌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저녁시간을 맞이한다.


때때로 하루가 무난히 흘러가는 듯하다가도, 가끔은 하루가 지독하고, 가끔은 하루가 길거나 무겁고, 대부분은 그저 그랬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날들을 돌아보고 짚어가며 사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일들에 무던해지는 것도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일과가 '출근'과'퇴근'으로 나뉘어 설명되는 것도, 그 둘 중에 어떤 시간을 '진짜' 자기 자신의 시간으로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어쩐지 시시했다. 그걸 나누어 생각하면 어느 한쪽은 가짜가 돼버리는 것 같아서 직장에서의 나도 퇴근 후에 나도 모두 '온전한 나'로 두기로 한다.


주변 사람들과 '행복'이라던가 '힐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수 있는 말이라고는 '모르겠다'일색이었다. 이러한 나에게 작은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는 것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직무유기와도 같다고 말했다.


행복은 빅데이터 같은 거야. 자신이 어떨 때 기쁨을 느끼는지를 차근히 알아가야 행복이 뭔지도 알게 되는 거지.


가만히 앉아 '그리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라는 말만 늘어놓는 나에게 지인이 해준 말이다. 감동하며 메모했다.


"그래서 넌 뭘 좋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질문이다. 자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향한다면 선뜻 대답하지는 못한다.


"너 있잖아 취미, 그리고 좋아하는 일"

"뭔데"

"매일, 그림 그리잖아"


사실 그렇다. 너무나 확실하고 반복되는 일과가 있는데도 선뜻 '취미'라는 말에 그림 그리는 일을 얘기하지 못했던 건 특별한 재주가 아니라는 생각과, 정말로 일상에 녹아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곳이 어디든,  무엇을 하든, 하루에 한 번 그림을 그린다. 그것만큼은 변함없다. 그리고 변함없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든다.


나의 하루는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손톱만큼이라도 온전히 마음에 드는 시간이 있다면, 그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일 것이다. 하루에 한 번, 일상의 한 장면을 그리는 일.


가장 일상적인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과 그 길에서


어디에도 가지 않고 퇴근 후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 길목에 멈춰 서서 오늘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날'임을 상기시키며 가끔씩 그림 속으로 옮겨두곤 한다. 그저 그런 하루에 지루해하며, 때때로 감사해하거나, 수고했다며 너스레를 떨면서.


골목길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는 낯선 곳에서 지내다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길에 접어들었을 때다. 그리고 한참을 힘내던 해가 자리를 비켜 기울어가면서 어둑어둑해지는 땅거미와 만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의 골목길이 좋아서, 그 어둑한 풍경이 마음에 닿아 그리게 되는 날들이 있다.

퇴근길 골목

또 어떤 날은 덜컹거리는 대중교통에 몸을 스르르 기대어 긴긴 하루를 돌아볼 때가 있다. 대중교통 속에서는 말 그대로 대중들과 함께라 잘 그리지 않는 타인들이 그림 속에 들어와 앉아있을 때가 있다. 어두워진 창밖과 저마다의 쉴 곳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조용히 지켜보기도 한다. 모두에게 지나가는 하루의 끝자락을 그림으로 담는다.

퇴근길 대중교통

퇴근길, 집으로 가는 방향은 다양하다.

버스를 탈 수도 있고, 지하철을 탈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씩은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수단이 다양하기 때문에 길목의 풍경도 다양해진다.

선호하는 풍경은 아무래도 하천을 따라 걷는 길목이다. 그 길 사이사이에 있는 정자와 공원에 하릴없이 걸터앉아 있다가 오기도 하고 햇빛을 쬐거나 비를 피하기도 하는 그 시간이 좋다.

퇴근길 공원 1
퇴근길 공원 놀이터
퇴근길 길목에서 털썩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일

요즘의 놀이터는 굉장히 멋져서 대부분 테마가 있다. 해적선이라던가, 우주선이라던가, 숲 속의 오두막집이라던가, 그림 그리는 화가의 집처럼 꾸며져있기도 하다. 가끔은 이런 놀이터가 눈길을 끌면 그대로 그곳에 앉아 주변의 시끄러움을 즐기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퇴근길에 같은 풍경을 다른 시간과 다른 느낌으로 본다는 것

여름날의 놀이터의  반짝임과 시끌벅적함은 청량한 느낌을 가져다줄 때가 있다.

가을날부터 부쩍 짧아진 해는 같은 시간 퇴근해도 저녁의 풍경을 보여준다. 겨울날의 어두움과 고요함은 릴랙스하고 차분한 느낌을 가져다줄 때가 있다.

퇴근길 숲과 낙엽들, 그리고 지나가는 계절을 지켜보는 일

퇴근길, 그 속에도 계절이 있고 날씨도 있고 일상의 노곤함이 있고 소탈한 감성들이 담겨있다.


매일이 비슷하고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온전히 마음에 드는 시간, 그 시간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일은 어떠한가.

하루의 끝에서 서성이는 감정들이 함께 서려있음을 알게되는 일은 또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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