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친한 지인과 장기 여행을 가기로 한 적이 있었다. 무려 17박 19일이었다.
우리는 몇 번씩 만나 여행계획을 세웠고, 그날도 어김없이 여행계획을 세우고 데려다주는 길이이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차 안이라 그냥 블루투스 스피커로 통화했다. 어어, 지금 가는 길이야, 여행계획 세웠지 뭐, 곧 들어가.
"이번에는 여행 가서 좀 베풀고 좀 그래. 괜히 돈 아낄 생각 말고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쓸 줄도 알아야지."
어어, 알았어하고 다급하게 전화를 끊자 마자 지인은 그제야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역시, 널 잘 아시네"
나도 지인도, 그 짧은 대화가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내 인간관계는 그리 넓진 않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여유롭다는 것이다.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수용력과 포용력이 넓고, 타인과 함께 하는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베풀 줄 안다. 분명 자신에게도 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느긋하고 천천히 사물과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며 상냥하게 대할 줄 아는 그들을 참 좋아한다.
반면 나는, 잘 베풀 줄 모른다. 누군가 내게 호의적으로 대하면 '고맙다'는 생각보다 '왜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사소한 친절을 받으면 비슷한 기회가 올 때 똑같이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먼저 드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내게 베푼 친절을 값아야 할 빚처럼 비슷하게 흉내는 낼 줄 아나 항상 선 베풂이 있은 후에 따라 하는 식이니 스스로도 베풀 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상냥한 사람'을 동경하고 좋아한다. 그래서 내 주변엔 친절한 사람들이 많고 나는 그들을 보며 이따금씩 따라 하려 노력하면서 내게 없는 친절을 보충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이 따라 하기식의 친절에 한계를 느끼는 건 그 친절이 자신에게 향할 때 이다.
그들은 때때로 '나는 오늘 쉬어야 해' 라든가, '나는 나에게 이것을 해주기로 했어'라는 식의 자기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위시리스트가 있었으며, 보상과 쉼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내가 따라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나는 다만 취미라는 이름의 보상들로 나를 다독여 오곤 했는데, 그림 그리기, 맛집 찾아가기, 북카페에서 하루 종일 있기, 운동하기 등이 그들이 말하는 자기돌봄 비슷하게 해당되는 행위였다.
나는 종종 메밀, 콩국수, 오므라이스, 카레 등 한 음식을 골라 그 음식 맛집들을 찾아다니곤 하는데, 한 번은 막국수 집을 막 찾아다닐 때였다.
"요 근래 막국수에 환장해서 매일같이 막국수 먹고 식후 커피까지 마시다 보니가 근 2주간의 식비가 한 달 식비를 웃도는 거 있죠? 진짜 많이도 처먹었어요."
그랬더니 상대방이 정색하며 "내가 먹었는데 처먹었다가 뭐야, 내가 나한테 맛있게 먹인 거지."라고 말했다.
그 대답에 나는 잠시 멈칫한다. 또 나 자신에게 친절하지 못한 말을 내뱉고 말았구나.
"맛있게 먹으면서 수고한 자신한테 보상해 주는 게 뭐 어때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나한테 맛있는 거 대접하는 게 뭐 어때서 그래. 그 식비가 아까워?"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내가 나를 대접해 줘야지. 내가 나를 대접해주지 않는데 누가 날 대접해 주겠어"
"그러게요 전 왜 돈이 많이 들었고 그게 아깝다는 생각만 했을까요, 맛있게, 좋아하는 걸 잔뜩 먹어놓고."
늘 이런 식이였다. 타인에 대한 친절은 닮아가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따라 할 수 있었지만, 자신에겐 곧잘 불친절해지곤 했다. 잘 못 베풀어왔던 것이다.
"그림 잘 그리네"라고 하면 "누구나 다 이 정도는 그려"라고 답하고, "운동 열심히 하네"라고 하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던데 뭘"이라고 답하며 늘 폄하하곤 했다. 다행히도 내 상냥한 지인들은 나의 장점을 알아봐 주고 아니라고 그런 건 훌륭한 거라고 자신에 대한 베풂을 잊지 않아야 한다며 자신에게 향하는 친절과 상냥함에 대해 상기시켜주곤 했다. 나는 그 말을 해준 지인들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도 닮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자주 들었던, 수시로 자신을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그 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자신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이 힘이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운동으로 땀을 빼면서 자신을 위로해 보자.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내가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다.
자신은 자신을 가장 잘 챙겨주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