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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칠리 Jun 24. 2022

01 | 입사 2개월 차. 2억을 날렸다.

22살, 입사 2개월, 그리고 2억

로스 추산액 2억입니다! 2억!


이게 뭔 소리야? 입사한 지 한 달을 조금 넘겼을 무렵,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이런 채팅이 와 있었다. 한 제휴몰에서 판매 중이던 상품이 주말 동안 판매중지가 되어 있어 그 손해가 추산 2억 원이라는 말이었다. 심장이 뚝, 떨어졌다.


20년도 11월, 나는 운영 대행사에 입사하여 유명 패션 브랜드의 온라인몰 담당자가 되었다. 디자인과를 졸업한 나에게 있어 온라인몰 관리란 '하얀 것은 화면이요, 검은 것은 텍스트로다'였다. 우리 회사도 운영 대행은 처음인 지 사수도 체계도 없었다. 덕분에 나는 고객사 대리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다녔다.


그러다가 우리 팀에도 '책임'이라는 직급쟁이가 생겼고, 나는 드디어 첫 사수를 맞이했다. 물론 사수가 있다고 내 실력이 비약적으로 느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고객사한테 욕먹는 건 줄겠구나 싶었다. 2억을 날렸다는 말을 듣기 전까진.



이거 금요일에 네가 건드렸어? 왜 확인을 안 했어!


처음으로 생긴 사수는 고객사의 채팅을 보자마자 호통부터 쳤다. 그럴 수밖에 없지. 금액이 2만 원도 아니고 2백만 원도 아니고 무려 2억인데. 나는 바로 동공 지진이 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 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책임이 자리로 불러서 가보니 정말로 기존에 판매 중이던 상품이 '등록 중'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상태 변경 시점을 보니 지난주 금요일, 내가 야근하던 시점이었다. 머리가 백지가 되고 심장이 뚝 떨어졌다. 자이로드롭을 탔을 때보다 더 무서웠다.



2억? 2억이라고? 배상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억 소리 나는 금액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사회 초년생이자 22살인 내가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집안 사정 또한 넉넉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빨간 줄이 그이겠다 싶었다.


두려움에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은 쿵쾅대고 눈물이 차올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쩌다가 그 상품들이 그렇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작업한 상품도 아니었으며, 분명 그날 작업한 건 책임과 함께 검수까지 하고 집에 돌아갔었다. 그런데 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누구의 잘못인지에 대해 시시비비가 갈리기 시작했다. 금요일에 야근한 사람은 나와 책임 둘뿐이었고, 해당 브랜드를 담당하던 것도 둘뿐이었다. 책임은 열심히 우리를 대변했다. API 문제라느니 시스템 문제라느니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작업했던 PC IP 땄어요. 이거 그쪽 맞죠?


결국 고객사는 해당 제휴몰에 IP 추적까지 요청했고, 금방 결과가 나왔다. 그 IP는 책임과 함께 작업했던 내 컴퓨터였다. 즉, 우리 회사 측 과실이었다.


누구의 잘못인 지 명확해지자 사고가 정지됐다. 머릿속엔 온통 2억이라는 거대한 숫자만 떠돌았다. 추산이라고 해도 손해를 끼친 건 명백했다. 상사분들이 분주하게 고객사를 상대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회사를 대변할 수 있는 자격도, 손실액을 메꿀 수 있는 힘도 없었다. 그저 판결이 나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한 달 치 운영 대행비 삭감. 우리 회사와 고객사 간의 조율 끝에 우리는 한 달 치 계약금을 날리게 되었다.


그날 나는 손실액을 배상하지도, 연봉이 삭감되지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대행 작업 초기여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실수였고, 이 부분에 대한 주의가 인수인계 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책임과 함께 작업하였고 최종 검수 자는 그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내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날 많이 울었다. 회사 화장실에서도 울고, 집에 와서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오래 울었다. 내 클릭 하나로 억 단위의 돈이 왔다 갔다 한다. 도저히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책임이 나를 다시 불렀다.





*본 글은 시리즈로, 이야기가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Jp Valer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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