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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칠리 Jun 28. 2022

03 | 퇴근 말고, 퇴사가 하고 싶어요.

그러지 말고 3개월만 버텨봐

저는 퇴근 말고, 퇴사가 하고 싶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하던 날이었다. 회사 아래 편의점에 저녁을 사러 갔는데, 동료 직원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퇴근하고 싶다고 어리광을 부리니 돌아온 답이었다.


나는 그 대답에 바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누구나 퇴사하고 싶은 마음은 있기에 입버릇 같은 말로 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게, 동료는 정말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게요. 퇴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말을 고르다가 그냥 나도 본심을 이야기했다. 당시 그 동료와 나는 매일 남겨져 책임에게 욕을 들었다. 책임은 마치 우리를 짓밟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늘 꼬투리를 잡았다. 그러니 퇴사하고 싶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나 또한 퇴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퇴사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도 2개월만 채우고 퇴사했는데, 이번에도 2개월째에 위기였다. 지금 퇴사하기엔 도망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을 아끼며 저녁거리를 골라 업무에 복귀했다.



다른 데 가도 다 똑같아. 지금 다니던 곳보다 더 이상한 곳이면 어떡하려고. 좀 더 버텨봐.


야근하던 중에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든 다른 곳이든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이유였다. 오히려 더 나쁜 상대를 만나면 손해라나. 엄마의 말이 맞았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교수님의 권유로 디자인 에이전시에 취직했다. 교수님께서 이사직으로 있는 작은 광고대행사였다. 나는 그곳에 정착하고자 근처에 집도 구했었다. 단 2달 만에 나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곳은 체계가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대표의 욕설, 다른 팀 선배의 똥개 훈련과 같은 갑질, 코로나로 인한 연봉 삭감 등. 총체적 난국이나 다름없는 블랙 기업이었다. 나는 분명 그곳보다 더한 곳은 없으리라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새롭게 일하게 된 직장에도 욕설, 갑질, 강요는 존재했다.



3개월만 버텨봐. 버티고 얘기해.


그래서인지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엄마는 버텨 보라고 했다. 이전이라면 그래도 퇴사할 거라고 우겼겠지만, 이미 경험한 것이 있으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문제는 나였다.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부터 고객사 대리가 채팅을 치고 있다는 표시가 뜨면 숨이 턱 막혔다. 책임이 내 이름을 부르면 몸이 차게 식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는 정신이 일순 아득해지거나 어지러웠다. 잠들기 전에는 책임의 욕설이 들렸다. 환청이었다. 꿈에서조차 나는 회사에 있었다. 늘 어딘가에 쫓겼다. 회사 가기가 두렵고, 사람과 대화하기 무서워졌다.

 

트라우마. 인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나는 원체 예민한 성격 탓에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성 질병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환청, 숨 막힘, 어지럼증 등은 처음이었다. 한 번씩 공황장애를 겪은 연예인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유명인들에게 국한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생각보다 더 쉽게, 빨리, 누구에게나 나타났다. 나에게도 말이다.



이런데도 나는 섣불리 퇴사할 수 없었다. 2억 로스 사건으로 한 달 치 운영 대행비를 깎아 먹었다는 죄책감이 가장 먼저 날 붙잡았다. 그리고 여기서 '또' 퇴사하면 앞으로도 한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말하는 그 '3개월'을 믿어보기로 했다. 모두가 3개월만 버티면 나아진다고 하니 그만큼은 버텨보자고. 버티고도 안 되겠으면 그땐 정말 퇴사하자고.



그렇게, 나의 생존 게임이 시작되었다.





*본 글은 시리즈로, 이야기가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Kristopher Rol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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