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우선순위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

내 삶을 좀 먹고 있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by Astro bits


일의 우선순위, 그리고 내 삶의 우선순위


병원에서 코디네이팅 업무를 맡게 되면,

환자의 입·퇴원을 챙기고 다른 간호사들의 업무까지 도와야 하기에,

일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전쟁터에 놓여 있는 느낌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마음속에 항상 불안이 심어져 있는 나 같은 사람은

하루 종일 귓가에서 나만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찻길로 갑자기 뛰어드는 고양이 같고,

적막 속에 예고 없이 들리는 충돌음 같다.


그들의 탓을 하면 안 되겠지만

같이 일 하는 동료들에게 나는 부탁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너무 바쁠 때,

자신이 못 하는 일을 부탁할 때

망설임 없이

거절당할 두려움 없이

쉽게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나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거절을 잘 못 하는 사람이다.

거절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거절했을 때 저 사람이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

거절 후,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어쩌지?

같은 두려움 때문에 거절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코디네이터로 제일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업무들을 우선순위로 두고

그 일을 먼저 해야 하는데,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나의 업무 리스트를 최대한 간단하게,

우선순위 위주로 편성하고 일을 효율적으로 끝내야 하는데

항상 그 사이사이 잡음이 들어온다.


그들의 부탁이 부당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내 업무를 먼저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너무 바쁘지 하며 안쓰러워하는 눈빛에

왜 나는 안도의 감정을 느끼며

왜 피해자 코스프레를 자처하는 것일까?


잘못되었다고 머리로는 생각해도

왜 나는 거절을 하지 않고

자처하며 그들을 돕고

그들의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즐기는 걸까?


정신없던 업무 끝에

나를 바쁘게 했던 일들을 탓하며

자긴 연민에 빠지는 그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나는

결국 이게 진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다 보면

결국 네 삶은 피폐해지고

버티지 못하는 삶이 될 것이라는 걸..


그런데 그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너의 탓이라는 걸.


피해자인 척

좋은 사람인 척

이렇게 살다 보면

너는 손해 보며 사는 삶을 살 것이란 걸.


그런데 손해 보며 사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100% 잘못되었다는 각성 없이

동정의 눈빛을 즐기며 살고 있는 것이

지금 너의 현실이라는 걸.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힘듦은

그들의 탓이 아니다.


이 상황으로 몰고 온

나의 탓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부터

그런 나의 태도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내 건강과 행복을 지키며

가족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려면

일터에서 나는 나의 에너지를 지켜내야 하며

가족들과 내 소중한 사람들 외의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것에 처연해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제일 어렸을 때의 나일 때부터

학습되어 온 이런 나의 가치관과 무의식을

손바닥 뒤집 듯 확 바꾸는 건 힘들겠지만


인지했다는 점에서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바뀌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지금 시점부터

너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응원해 주고 싶다.


그리고 이젠 정말 변화할 수 있기를..

아주 작은 변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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