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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진 Dec 23. 2021

사랑의 모양

21-06-30

누구도 내가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할 수 없다. 내 사랑은 지나치게 섬세하고 무거워서 종종 상대를 도망치게 한다. 


나는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데도 누구도 사랑하지 않기로 한다.


내 사랑의 불씨는 영원히 젖는다. 바다에 빠진다. 나는 끝을 모르는 물 속에서 천천히 헤매인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헤매었다. 더운 숨을 쉬는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갈증을 느낀다. 


바닷물은 나를 적셔주지 못했다. 꺼끌한 소금기만이 뱃속에 버석거린다.


여전히 목이 말랐다. 겨우 삼킨 침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위장에 꽂힌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밤들이 하나 둘 날아간다. 앞으로 몇 밤이나 더 지새게 될까. 나는 언제까지 마른 목을 부여잡고 어둠 속을 헤매일까.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울림이 공허하게 되돌아온다.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고 싶다는 외침이 불쑥 올라온다. 


연약한 결심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다른 이들보다 거대한 사랑의 그릇을 타고 났으니 채워야 할 사랑도 크다. 그 커다란 그릇 속에 몸을 뉘인다. 

날 위해 물을 들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 있을 거란 상상은 이제 지겹다. 이 갈증은 내 숨이 옅어질 때까지 계속되다가 나를 결국 삼킬 것이다. 


나는 텅 빈 그릇 속에서 정성스레 사랑을 빚는다. 지나치게 섬세하고 복잡하게. 누구에게도 건네지 않을 사랑은 그릇 속에 쌓여간다. 


나는 언젠가 이 사랑에 질식해 죽겠지.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 사랑이 가득 차 터져 나갈 것 같을 때도 나는 여전히 사랑을 빚는다. 그게 나의 전부이고 그게 나의 숨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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