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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진 Dec 23. 2021

외로움이 날 삼켜도

2021-06-02

잠들기 전, 종종 나는 인형을 끌어 안는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외로움이 나를 뒤덮고 가슴 언저리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할 때, 그럴 때 나는 인형을 좀 더 꽉 안는다. 인형이 없을 때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는다. 캄캄한 이불 속 온전히 홀로인 난 어둠을 유영한다. 


연애를 한 적도 없는데 외롭다는 걸 느껴?


어렸던 내게 누군가 던진 질문이 나는 의아하기만 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한 항상 외로웠으니까. 마치 내 영혼의 일부가 비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유 모를 공허함이 눅진하게 들러붙었고 매일 밤 외로움이 나를 삼켰다. 고래 뱃속처럼 축축하고 따뜻한 외로움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한  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누군가와 이어져 있던 기억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망망대해에 나 홀로 떠다니는 그 수많은 밤들은 나의 본질에 무엇보다 가까이 있었다. 


시작된 기억도 없이 언제나 내 곁에 머물던 외로움이 누군가에게는 연애라는 조건에 따라붙는 감정일 뿐이라는 것을 듣고 나는 한참을 얼떨떨하게 있었다. 모두가 나와 똑같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한 발 빠져나온 순간이었다. 나에게 연애와 외로움은 독립적인 항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외로움은 원초적이고 거대한데 연애는 구체적이고 세세한 것이라 연애로 외로움이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반쪽을 기다렸다. 나의 빈 곳에 꼭 맞을 내 영혼의 반쪽이 언젠가 나에게서 외로움을 지워줄 것이라고 되뇌였다. 


이 거대한 외로움은 어디에서 온 걸까. 어린 시절 애정결핍을 탓하기엔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싶다는 욕구가 강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와 살을 맞대고 온도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 아무나 붙잡고 안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홀로 있을 때 완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자꾸만 다른 사람을 붙잡는다. 이야기를 나누고 눈을 마주치고 서로의 숨결을 느낄 때 나는 잠시 깜깜한 고래 뱃속에서 나와 햇살을 느낀다. 


결국에는 ‘내’가 남아. 나는 오로지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싫지 않게 노력하고 있어. 

엄마가 한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자기 전에 내가 마주하는 시간은 사실 오로지 ‘나’만이 남아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나의 빈 곳을 채워줄 반쪽을 기다리지 않고 부서져 있는 나 그대로 견뎌내는 밤. 외로움은 언제나처럼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그럼 나는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초를 켠다. 외로움 속에 있는 내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서. 부서진 나를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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