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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진 Dec 23. 2021

기다림의 미학

2021-06-07

내가 사는 경기광주에서 서울로 나가려면 빨간버스를 타야하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 차를 타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기본 배차 시간이 20분이 훌쩍 넘어가서 집에서 앱을 보며 시간을 재다가 적당한 시간에 나가는 일을 매번 반복해야 한다. 시간만 잘 맞춘다면 이런 사전 준비 과정은 별로 어렵지도 않다. 문제가 되는 것은 버스를 놓칠 경우이다. 다른 경로를 아무리 검색해봐야 나오는 것은 다음 버스를 타라는 소리뿐, 이삼십분의 긴 기다림 끝에 버스에 오르면 이미 지각은 확정이다.


스무살까지 서울에만 살던 내가 경기도로 이사온 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바로 교통 문제이다. 예상 도착시간이 5분만 넘어가도 늦게 온다고 툴툴대던 내게 기본 20분의 기다림이 주어지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화도 내보다가 이제는 반쯤 체념했다. 그래도 한번 버스를 놓치면 온갖 환멸이 느껴지는데, 도착시간이 늦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기가 정말 힘들다. 기다림이 내게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기다림. 사실 기다림이란 단어는 묘한 설렘을 준다. 소중한 사람과의 재회, 근사한 선물을 받는 크리스마스 밤, 세 개의 계절을 지나온 첫눈처럼 대개 커다란 기쁨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과정이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약속시간에 늦은 친구나 물건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것은 다소 지루하지만, 어쨌든 새로운 상황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있는 것은 같다. 기다림 끝에는 봄처럼 환한 무언가가 우릴 반겨주고, 우리는 기다림의 순간을 설렘으로 가득 채운다.


그러나 버스를 기다리는 순간만큼은 예외다. 목적잃은 손이 SNS를 들락날락거리고 1분이 1시간만큼이나 길게 느껴진다. 20분, 길게는 40분의 시간이 무언가 본격적으로 하기에는 짧게 느껴지는데다 언제 버스가 올지 모른다는 조바심 탓에 어느 곳에도 집중하기 힘들게 한다. 시간만의 문제도 아니다. 다른 종류의 기다림은 기다림 끝에 바로 목적에 도달하는 것에 비해 버스를 기다릴 때는 기다림 후에 또다른 기다림을 겪어야 한다. 차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장소에 도착하기 위한 여정이니 말이다. 기다림을 기다리는 것은 사람을 꽤나 지치게 만든다.


기다림은 숭고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기다림이 길어질 수록 더욱 그렇다. 기다림은 기다리는 대상을 위해 내 시간을 온전히 쏟는 것이라 상당히 자기희생적인 일이다. 그 대상이 내게 존재하지 않을 때도 내 속에 자리를 마련해두는 것은 큰 애정이 있지 않고서야 쉽지 않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그래서 싫은가 보다. 버스에게 내 마음 한 켠을 내어주기 싫은 거다. 버스가 오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그래서 피곤하게만 느껴지는가보다.


경기광주에 사는 이상 버스를 오래 기다리는 일은 앞으로도 나의 일상일 것이다. 이 기다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 기다림을 설렘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버스를 기다릴 때 하는 것을 정해두어야 겠다. 버스를 사랑하기에는 내 애정이 그리 넓다랗지는 못하고, 온전히 버스만을 기다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 최선일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릴 때 듣는 팟캐스트를 정해두거나 지금처럼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평소에 흘려보내는 20분은 아무렇지 않으면서 기다림에는 이토록 유별나게 구는 내가 재밌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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