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떠나는 날, 공항에서 생존하기.
1장. 떠나는 날, 공항에서 생존하기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와 똑같은 하루.
성실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복되는 일상.
그런데도 늘 부족하다는 말들.
견디다 못해 나를 끌고 나온 결정이었다.
나는 그 충동을 ‘캐나다’라고 번역했다.
내가 어딘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내가 있던 세상이 너무 거칠었던 걸까.
서른세 살에 유학을 간다고 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다.
지금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80년대생으로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엄청난 자격증 하나, 우수한 학벌, 빛나는 이력 하나 없이는 사회에서 무력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언젠가부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라는 질문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를 증명해야지, 잘난 사람이 되어야지, 남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아야지, 하던 나는 결국, 과로로 쓰러졌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바람에 교실 책상에 허리가 부딪혀 내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하던 어느 날,
나는 유학원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TESOL 과정 문의드리려고요.”
그렇게 모든 게 시작되었다.
몇 달 뒤, 나는 캐리어에 내 전 재산을 담고
떠나고 있었다.
두렵고 막막했지만
내가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나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2020년 02월 20일. 만만의 준비를 해서 내 몸무게보다 1.5배 되는 캐리어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멀리 간다고 생각하니 떨리기 시작했다.
분리불안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우리 집 강아지에게는 내가 멀리 간다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기 위해 그저 큰 짐들을 옮기는 것처럼 하고 나왔다.
내가 강아지의 온 우주라서, 그 온 우주가 떠나려고 하니, 안 그래도 3.5kg의 강아지가 더 작아 보였다.
강아지 름름이가 내 발치에 앉아 조용히 나를 올려다봤다. 작은 눈이 흔들렸다. 그 눈빛을 마주 보는 순간, 말도 안 되게 가슴이 뻐근했다.
‘알아 내가 너한테 우주라는 거.미안해..’
그래서일까. 그 작은 생명체는 무언가를 느낀 듯 조용히 꼬리만 살짝 흔들었다.
“금방 올게, 름름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강아지에게 말했다.
“름름이 잘 있어. 엄마가 사랑해. 엄마 돌아올때까지 절대로 아프면 안돼. 약속...”
내가 저질러놓은 생명을 부모님께 떠맡기고 가는 길이라,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이었지만, 강아지 맡겨놓고 가는 딸 원망 보다, 그저 멀리 가는 딸을 걱정해 주는 엄마 눈빛에, 내 코는 너무나 시려졌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며 버스정류장에 앉아 엄마 손을 잡았다.
“엄마 나 23살에 뉴욕 갈 때 엄마가 나 용돈 쥐어주면서 쪽지 써줬던 말 기억나? ‘있을수록 겸손하고, 없을수록 당당하라’고…”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니?” 엄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네가 다 커 보였는데… 지금은 더 그렇다. 잘 다녀와. 엄마는 괜찮아.”
나는 눈시울을 꾹 눌렀다.
“응. 잘하고 올게. 걱정하지 마. 사랑해, 엄마.”
시간 맞춰 공항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마지막으로 뒤돌아봤다.
엄마가 마스크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가 출발한다. 두근두근. 정말로 가는구나.
그때 나는 몰랐다.
이 하루가, 앞으로 펼쳐질 500일의 인생의 시작일 줄은.
****
버스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내 짐들을 ‘웩’ 하고 뱉어내더니 쿨하게 떠났고, 나는 큰 숨을 들이마셨다.
“자. 가자.”
캐리어들과 함께 공항에 들어섰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광경인가?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내가 아는 인천공항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 나 말고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에 혼자 우두커니 살아남은 생존자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 나오기 시작했다고 공항이 이렇게 된다고?
텅 빈 공항.
직원 한 명 덩그러니 앉아있는 수속절차 카운터에 가서 티켓을 발급받으려고 서류와 여권을 건넸다.
직원이 물었다.
"미국 비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