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비자가 왜 필요하지
"비자요? 저 미국 여행 안 하는데요? 저는 그냥 경유만 해요."
"아, 미국 경유도 ESTA 비자 필요하세요."
“네!??!!!!?”
갑자기 목 뒤가 뻣뻣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공항 직원은 미국 환승을 위한 이스타 비자를 신청하고 빠르면 15분, 늦으면 72시간 이내에 비자가 나온다고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30분 내로 미국 비자가 안 나오면 나는 미국 환승을 할 수 없어 나의 모든 티켓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당장 입국 수속을 해야 하는 나에게 72시간이란 건 말도 안 됐다.
내 비자는 **무조건 15분 이내에 발급**돼야 했다.
비행기는 저녁 6시 30분,
5시 10분까지 비자가 안 나오면 **그냥 출국 자체가 불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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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못 타는 건 둘째치고
항공권 취소 수수료만 30만 원이었다.
다음 비행기는?
캐나다에서 입주하기로 한 룸렌트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공항에 도착하면 타기로 한 콜밴도 예약해 뒀는데...
심지어 나는 소비 습관을 고치겠다고 **내 신용카드도 잘라버린 상태**였다.
달러로 결제 가능한 카드도 없는 상황.
'공항 은행 가서 해외용 카드도 만들고 출국해야 하는데... 진짜 환장하겠다.'
***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스타 비자를 신청했지만
내 카드는 체크카드라 결제가 안 됐다.
‘내 손으로 내가 신용카드 잘랐거든!!… 하하 미치겠네.’
그때 떠오른 건,
며칠 전 찍어둔 **아버지 신용카드 사진.**
그걸로 다행히 결제가 됐다.
"아니 무슨 공항 환승하는데 14달러를 내냐, 도둑놈의 미국 새끼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비자 신청을 마치고
황급히 공항 내 은행으로 뛰어내려 갔다.
***
“안녕하세요! 저… 해외에서 결제 가능한 카드 만들고 싶은데요! 지금 바로요!”
은행 직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바로요? 출국 언제세요?”
“한 시간 반 뒤요. 아뇨, 사실 40분 남았어요.”
“그럼 빨리 만들어 드릴게요. 체크카드밖에 안 돼요.”
“네, 네! 아무거나 좋아요! 해외에서만 되면 돼요!”
서류 쓰고, 사인하고,
**결국, 카드를 발급받았다.**
***
‘오케이. 비자 신청했고, 카드 해결했고…
이제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서 비자 떴는지만 확인하면 돼.’
하지만—
공항 한복판.
나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덜덜 떨며
휴대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 왜 안 와… 왜 이메일이 안 오는 거야…’
**15분이면 온다며...**
새로고침.
또 새로고침.
열 번, 스무 번, 쉰 번.
**아무것도 안 떴다.**
***
어느 순간 나는 개미새끼 한 마리 없는 조용한 공항 의자에 **대자로 드러누워 있었다.**
신청한 지 30분이 지나, 수속 데드라인이 지나는 시간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티켓 발행 직원에게 다가갔다.
"저... 아직 안 나온 거 맞죠...:
공항 측에서도 **확인되는 비자가 없다고** 했다.
시간은 흐르고,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탈 사람들은 모두 출국 짐을 부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그걸 지켜보는 나.
**비행기 티켓 취소 데드라인이었던 5시 10분이 가까워졌고**
내 멘탈은 서서히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
‘망했어.... 진짜 캐나다 못 가겠네…’
5시 10분, 수속마감 데드라인은 지나갔고
나는 죽을 상이 되어 체크인 카운터로 다시 갔다.
"저… 비자 아직도 안 나왔어요..."
직원은 측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요, 아직 없네요."
"티켓... 취소해야 되겠죠..."
***
그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오늘 벌어질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
- 부모님께는 캐나다 잘 도착했다고 거짓말해야 하고
- 공항 콜밴은 취소하고
- 집주인에게 도착 늦어진다고 말하고
- 비행기 취소 수수료 내고
- 다음 표 알아보고
- 공항 근처 모텔에서 혼자 자고
- 친구들한테는 이 멍청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지?
나는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저 어떻게 해요... 저 진짜 가야 되는데..."
-
그때 직원이 **마지막으로 새로고침**을 눌렀고
그 순간 — **비자가 떴다.**
“아, 나왔네요!”
나는 그 자리에서 거의 절규하듯 외쳤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항에 사람이 많지 않아
내 목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바로 짐을 부치고, 출국장으로 달려갔다.
***
가족들과 통화하며 마지막 입장 시간을 맞추려던 찰나,
032로 시작하는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는 원래 안 받지만
느낌이 쎄 했다.
받자마자,
"여기 인천공항 수하물 관리처인데요, 짐 안에 보조배터리 있으시죠?"
폐기 안 할 거면 **지금 바로 오셔야 된다**고 했다.
‘아... 젠장. 핸드폰 정지시켰으면 어쩔 뻔했어…’
나는 캐리어를 끌고 **정신없이 수화물 관리 처 센터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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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배터리를 손에 넣고 탑승구를 향하는데
수화물 센터 직원이 **내가 가야할 게이트 방향을 잘못 알려줬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고,
게이트 숫자가 반대로 간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다시 다른 직원에게 물었더니
내 탑승구는 완전히 **반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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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마감 시간은 3분 남음.**
우사인 볼트처럼 달려도 불가능한 거리.
나는 제2터미널의 곡선을 따라
올림픽 출전하는 육상선수처럼 인천공항을 질주했다.
캐리어는 덜컹거리고
팔은 저리고
마스크는 흘러내리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열려 있어야 돼… 제발…”
게이트 문이 보였고
나는 티켓을 흔들며 외쳤다.
“저요!!! 밴쿠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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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내에 들어갔을땐,
모든 승객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캐리어를 선반에 올리려 했지만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옆자리의 한국 여자분이 조용히 일어나
말없이 짐을 들어주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정말요?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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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지나가길래 말했다.
“저기요… 저 물 한 잔만 주시면 안 될까요…”
“이륙 후에 드릴게요.”
"제...제가 지금 너무 숨이 가빠서..."
“죄송합니다. 규정상 이륙 전에 물 제공은 안 됩니다.”
델타항공 미국 승무원은 나를 너무나 무시 한 채로 쌩 하고 가버렸다.
'잉... 대한항공 승무원이었으면 생수한병 친절히 가져다 줬을텐데..'
그 순간,
앞자리에 앉은 백인 여성이 조용히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방을 열고,
**새 생수 한 병을 꺼내 내밀었다.**
'마셔. 너무 힘들어 보인다'
그녀는 눈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
나는 두 손으로 그 물을 받아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진짜… 감사합니다. Thank you s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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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같은 물 한 병을 단숨에 마셨다.
그제야, 내 몸이 조금 살 것 같았다.
마스크를 턱으로 내리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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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뭔 놈의 출국이 이렇게 박진감 넘치냐...’
머리를 뒤로 젖혔지만
몸은 탈진했고
눈은 감기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여전히
비자 새로고침 화면에 멈춰 있었다.
비행기가 서울 상공을 날게 되자
묘하게, 아주 묘하게—
**마음 한구석이 조용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비행기를 타긴 탔네.”
짧은 숨이,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