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드 프로젝트 연대기 02
이번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시리즈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핵심은 이 문장에 있는 것 같다. 시키지 않은 일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먼저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안 하면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인스타그램은 아무래도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다. 계정을 만드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고, 콘텐츠를 만드는 수고가 가장 덜 들어가고, 유입도 비교적 쉽다. 어떤 아이디어나 컨셉을 정했을 때 일단 인스타를 만들면 가장 빠르게 정체성을 형성하고, 각인할 수 있다. 유입이 많은 만큼 기회도 많이 오는 채널이다. 생각지 못한 제안을 받거나, 동료를 모을 수 있다.
이게 '왓츠뉴'라는 인스타그램 채널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3가지의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운영해본 결과로 배운 점이다. 물론 계정을 성장시키는 건 그리 쉽지 않은데, (여기서 '인스타그램 1만 팔로워 빠르게 달성하기' 같은 내용은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4년을 운영한 '왓츠뉴'가 여전히 5천 팔로워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사이드 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한 건 아닌데, 왓츠뉴로 인해 많은 기회가 생긴 것은 인스타의 그 쉬운 접근성 덕분이었다.
처음 채널을 만든 건 브랜딩 회사에서 인턴을 할 때였다. 당시에 브랜드 뉴스를 클리핑해서 콘텐츠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팅 때마다 내가 제안한 뉴스가 자꾸 짤려버린 것이다. 미팅에서 짤린 소재를 모아다가 개인 채널에 콘텐츠로 올렸다. 그러면서 만든 이름은 새로운 뉴스를 소개한다는 점을 강조해 'What's new?'였다. 주로 신제품, 신기능을 소개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캐릭터도 만들었다. 이전에 광고 공부를 할 때 과제로 만들었던 내 캐릭터를 살짝 응용했다. '주니어'와 '취준생'이 타겟이라 쉽고, 가볍고, 친절하고, 키치해보이고 싶었다.
이 채널은 마케팅 채널을 스캔하던 사수의 눈에 금방 걸려버렸다. 어디서 많이 본 뉴스를 소개하고 있는 채널이 있던 거다.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개념이 다소 희박하던 때였지만, 회사에서는 꽤나 응원과 칭찬을 받았다.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것도 스터디가 되니까.
그렇게 브랜드, 마케팅, 트렌드 뉴스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1년 넘게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다음 회사에 갈 땐 이미 이 콘텐츠를 알고 있는 마케터 분도 만날 수 있었다. 인턴이 끝난 이후에도 왓츠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뉴스 스크리닝을 꾸준히 해야 했는데, 거기에 더해서 나만의 인사이트를 더하려면 꽤 많은 스터디가 필요했다. 단순히 '이런 뉴스가 있더라' 소개하는 (이를테면 아이즈매거진 식의) 콘텐츠는 속도감이 가장 중요한데, 나는 그만큼 콘텐츠를 자주 발행할 시간이 없었고. 깊이감을 확보하려니 추가 스터디는 필수였다. 그때 한 스터디가 차곡차곡 내 지식과 역량으로 쌓이지 않았을까.
서서히 콘텐츠의 인게이지먼트가 높아지고, 얼핏 사람들이 이 채널을 실제 '뉴스' 채널, '미디어'처럼 생각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왓츠뉴에 소개되었다고 홍보하는 글도 보았고, 실제로 감사 선물을 보낸 스타트업도 있었다. 취준생이나 주니어 마케터들에게 '마케팅 공부를 하기 좋은 채널'로 추천받기도 했다. 광고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페이를 많이 받지도, 건수가 많지도 않았지만 의미 있는 성과였다.
왓츠뉴 채널은 지속하고 있지만, 성격은 그 전과 같지 않다.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하면서부터 변화를 꾀했다. 인게이지먼트는 떨어졌지만, 만족스럽다. 스스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케팅 뉴스를 소개하는 채널은 점점 많아졌고, 뉴스 소재의 차별성은 떨어졌으며, 특히 다른 채널들을 함께 모니터링하는 내 입장에서는 내가 만드는 콘텐츠 하나하나가 절대 '새롭지' 않았다.
이름이 왓츠'뉴'인데 새롭지 않다니, 뭔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시작하는 사람들> 인터뷰 시리즈이고, 이에 대한 내용은 이전 편과 이어진다. (https://brunch.co.kr/@hardw1996/104)
같은 컨셉과 주제의 인스타그램을 몇 년씩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이로운 마음이 든다. 특히 내가 그렇지 못해서 더 그렇다. 항상 새로운 걸 쫓아다니는 내 성향도 있겠지만, 같은 걸 반복하는 건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 취지와 맞지 않았다. 본업에서 해보기 어려운 일을 테스트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그렇게 인터뷰와 독립출판, 전시, 모임을 하고 나서 잠시 쉬는 기간에 들어왔다.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꾸미면서 새로운 인스타그램 계정을 또 하나 만들었다. 철저하게 신혼집에 대한 이야기만을 올리는 계정인데, 인테리어 과정을 진지하게 담고 싶었던 초기의 의도와 달리 '리빙' '신혼집' '인테리어' 같은 카테고리는 쉽게 '오늘의집화'되었고, 실제로 오늘의집 콘텐츠로 올라간 것을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도 활력을 다소 잃었다.
인스타그램을 만드는 건 정말 쉬운 일이지만, 지속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어떤 계정이 터지느냐, 그것도 알 수 없다. 꾸준함과 새로움 사이에서도 항상 갈팡질팡한다. 반응이 좋은데 계속 해야 할까? 아니면 하고 싶은 다른 일로 전환해야 할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나보다 훨씬 오래, 훨씬 큰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같은 고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