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드 프로젝트 연대기 04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시리즈 네 번째.
이번엔 한 가지 의문이 추가된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사이드 프로젝트의 핵심은 이 문장에 있는 것 같다. 시키지 않고, 돈도 되지 않는 일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왜 독립출판을 선택했고, 그 과정이 어땠는지에 앞서 독립출판이 얼마큼의 수익을 가져오는지 먼저 고백해야 할 것만 같다. 온라인에 콘텐츠를 발행하는 것은 무료지만(플랫폼 이용 수수료를 제외하면), 종이책을 만드는 데는 분명한 비용이 든다. 최소, 정말 "최소한" 100만 원 이상이 든다. 비용이 드는 만큼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독립출판으로 돈을 벌긴 쉽지 않다. 대박을 친 몇몇 경우에 어떨지 모르겠으나, 말 그대로 1인출판사를 차려 자비로 출판하는 경우에 들어오는 수익으로 들인 비용을 회수하긴 쉽지 않다.
내 독립출판물은 소량 옵셋인쇄를 겨우 찾은 결과 200부를 찍었고, 약 140만 원이 들었다. (정말 싸게 한 셈이다) 그 밖에 굿즈를 함께 만들어내느라 30~40만 원이 추가로 들었고, 포장재 구입과 배송에도 약 20만 원, 인건비는 당연히 0원이 되었고, 출판사 등록 비용이나 인터뷰 과정에서 든 소소한 비용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그리고 펀딩에서 약 150만 원, 독립서점 판매 비용이 약 50만 원이니 무언가 벌었다고 보긴 어려운 셈이다.
이게 사업이라면 망한 사업이다! 쓰는 돈이 더 많다는 점에서 독립출판은 취미라고 보는 게 더 맞을지 모른다. (사업성을 강화하는 전자책 시장도 있지만, 애초에 내가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니 다루지 않기로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면 반드시 돈도 벌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의견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부업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사이드 프로젝트는 분리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본다. 본업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돈을 버는 것' 자체에 얼마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지 안다. 독립출판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쓰이는데, 돈을 버는 데까지 에너지를 쓴다면 지속할 수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처음부터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물론 독립출판 자체에 관심도 많았고, 언젠가 책을 낸다는 꿈도 있었지만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인터뷰 시리즈는 독립출판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지 않았다. 인터뷰 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터뷰'에 대한 열망이 먼저 있었다. 온라인에서 연재하다 보니 휘발되어 흘러가는 콘텐츠에 아쉬움을 느끼고, 종이로, 물건으로 남아있는 출판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게 악성재고가 될 줄은 모르고)
다른 무엇보다도 독립출판을 해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은 꽤 즐거웠다.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즐거웠다. 뉴스레터 편에서 뉴스레터는 한번 발행하면 수정할 수 없어 긴장된다고 말했는데, 종이책은 더 하다. 전량폐기하지 않는 이상 수정이 어렵지 않나. 원고를 훨씬 더 정교하게 다듬고, 교열·교정도 거쳤다. 판형에 맞춰 레이아웃을 구성하고, 서체, 자간, 행간 등을 고려해 편집하고, 사진을 배치하고, 종이를 고르고, 샘플도 보고, 인쇄를 진행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직접 다루어본다는 현실감, 실체감 같은 것이 좋았다. 들어가는 정성과 집중력도 다르다. 한 손에 잡히는 이 종이책이 몇 그람쯤 될까? 그만큼의 무게감이 온라인 콘텐츠와는 다른 묵직한 성취감을 준다.
펀딩이 끝나고, 독립서점에 입고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인덱스숍에 책을 입고하고, 전시와 모임도 진행하게 되었다. 서점에 진열된 책을 보는 느낌이 또 색다르다. 그 책의 페이지를 손으로 넘겨보는 독자를 보는 일도. 이 책은 몇 부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 반응을 생생히 느끼긴 어려웠지만, 나름의 후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처음 사본 인터뷰집이 이 책이었다는 독자는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시작의 설렘과 에너지를 잘 기록해 주셨다. 그 사실이 마음에 남는다. 돈을 많이 버는 것 말고, 내가 만든 결과물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가서 닿았다는 사실 자체가 남았다. 독립출판하길 잘했다, 생각한다.
기성출판과 다르게 독립출판은 전 과정을 비전문가가 수행한다. 그만큼 어설픈 부분이 있지만 또 기성의 문법을 따르지 않은 채 한 사람의 주도성이 빛나는 일이기도 하다. '하고 싶다'는 초기의 강력한 의지가 잘 드러난다고 할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기성출판이야 출판사의 목적이 책을 만들고 파는 일이니 '해야만 하는 일'인 건데, 독립출판은 엄밀히 말하면 꼭 필요한 일은 아닌 거다. 누군가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그래도 너무 하고 싶어 했기에 나온 거다.
고등학교 때 잡지를 만든 적이 있다. 브런치에서는 한 번 다룬 적이 있는데. 그때도 교지부에 떨어지고 나서 잡지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미 있는 조직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작더라도 내가 새로운 판을 만드는 게 내 인생의 복선 같기도 하다. '기성' 아닌 '독립'의 가치에 더 마음이 간다.
+
재미있는 건 뉴스레터를 보는 사람들은 내가 뉴스레터를 내놓았기 때문에 의심 없이 '콘텐츠 생산자'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독립출판물 역시도 내가 일단 내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나를 '작가' 혹은 '에디터'라고 받아들인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수치로 딱 떨어지는 성과 말고, 일련의 과정들을 몸소 거쳐서 나온 작업의 결과물들은 세상에 나와있다는 것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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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저냥 대단한 건 못 되어도 많은 걸 융합하며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계속 아마추어 상태라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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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매년 1월 27,000원의 등록 비용을 낸다. 1월이 다가오고 있다. 과연 내년에는 또 다른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