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기 못한 것에 좌절하기 싫어 다짐을 잘하지 않았는데 해버렸고, 지키지 못했다.
삶이란 어차피 지키지 못하는 것 투성인데 유난이라고 하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꽉 찬 5일 정도 여행을 다녀왔기에 어려웠다고 핑계를 대본다.
지난달 베트남, 이번 세부로 여행을 다녀오며 깨달은 바가 많다.
나는 참으로 양은 냄비 같은 사람이구나. 단순해서 쉽게 기분 나빠지고, 쉽게 풀어지는. 옆사람 힘들게 하는 기복이 참 큰 사람임을 느꼈다. 사실 지나고 나면 그렇게 큰 일도, 기분 나쁠 일도 아닌데 나는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왜 나는 이렇게 작은 일에 분개하는 옹졸한 사람이지? 왜 이런 사람이 된 거지? 금방 풀린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애초에 욱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나의 상태를 파악했으니 이에 맞는 진단을 내렸다. 욱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한 번 심호흡하기. 화난 마음을 밖으로 표출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해 보기. 이 사소한 일이 내 인생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까치 않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한 템포 쉬어가며 생각하자. 마인드 컨트롤- 한 번에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분명 욱하는 순간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21살 그 어린 나이엔 길바닥에서 허구한 날 고생하며 굶더라도 저렴한 비행기표를 매일 같이 찾아보고 예매를 했다. 유럽이라고 다 훌륭한 여행지는 아니었을 텐데 무엇이 나를 가슴 뛰게 한 걸까? 그때의 그 열정과 호기심이 이제는 사라진 것만 같아 아쉽다. 편하고 호사스러움만 찾게 되는 게 아닌지. 눈앞의 불편함에 대해 투덜거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내가 지내온 환경과 달라 불편해가 아닌 오 이럴 수도 있네! 이런 점에서 참 좋다! 하고 생각할 수 있기를.
평소 타인과 일정거리 이상 가까워지는 걸 꺼려하지만, 함께 며칠 싹을 낯선 상황에 놓여 지내다 보면 쉽게 선을 넘게 된다. 그럼 내가 열심히 숨겨온 나의 구린 모습들이 그대로 밖으로 나와 정말이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외면하고 있던 부족한 나를 마주하고 그것을 현명하게 통제하는 일련의 과정이 도전이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성숙하고 현명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갈 길이 너무 멀다.
여행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고, 그렇지만 지금 여기서 행복함을 깨닫고, 새로운 사람과 상황을 마주하고, 몰랐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인가 보다. 물론 몸과 지갑(?)은 고단하지만, 배우고 생각한 게 참 많다. 2023년 아직 남은 여행이 많다. 남은 여행들에선 또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나를 마주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