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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Jul 16. 2021

청계산에 울려퍼진 TouchBy Touch

  

    요즘은 주말마다 거의 산에 오른다. 지난 주말에는 청계산을 오르기로 했다. 옛골 근처 한적한 길에 차를 주차하고 완만한 등선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옛골에서 매봉으로 가는 코스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더니 과연 등산로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북적이던 청계산을 오르다가 한적한 길을 오르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힐링되었다. 길에는 개망초 무리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있었고 길 가던 길고양이는 먹이를 달라고 목을 빼고 우리를 바라봤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나와 남편은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두 갈래의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였다. 갑자기 귀를 찢을 것처럼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 When I feel the time is rihgt, And you're staying by my side"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산을 쩌렁쩌렁 울리며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나는 도대체 이 소음이 뭔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소음의 진원지를 찾았다. 그 소음은 바로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자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남자는 일행이 없이 혼자였다. 그는 열심히 페달을 굴리고 있었는데 자전거에 조그만 카세트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음악은 거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왕년에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듣던 Touch By Toudch 라니, 그러나 음악에도 적절한 타이밍과 장소가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조용한 등산로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Touch by Touch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소음에 가까웠다.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산악자전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자전거 전용 헬멧을 쓰고 긴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등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앙증맞은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스포츠용 고글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도 산악자전거를 즐겨 타는 모양이었다. 장딴지가 엄청나게 굵고 근육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그의 기분은 최상인 모양이었다. 그는 음악의 리듬에 맞춰서 엉덩이를 실룩거리고 상체를 꿀렁거리고 있었다. 

    짜증스러운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모처럼 주말에 조용한 산행을 하기 위해서 서둘러 나왔는데 정말 망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덜 북적일 때 산을 오르기 위해서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왔다. 그렇게 조용한 등산을 위해서 서둘렀는데 예상치 못한 산악자전거 남자의 소음이라니. 그야말로 짜증이 치밀었다. 


    산악자전거는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었다. 경사가 아무리 완만하다고 하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산악자전거 남자는 갈지자로 자전거를 타면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최대한 힘이 덜 들어가도록 자전거를 오른쪽 길 끝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핸들을 틀어서 왼쪽 끝까지 갔다가 하면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산악자전거와 한동안 비슷한 속도로 올라갔다. 그러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왔다. 산길에 울려 퍼지는 터치 바이 터치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소음에 가까웠고 점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 소음 좀 줄이라고 얘기 좀 해요' 하고 속삭였지만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편이나 나나 이런 상황에서 클레임을 걸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우리가 상황을 피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남편이 신호를 보내더니 빠른 걸음으로 산악자전거를 제치자고 했다. 나도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때부터 우리는 속도를 냈다. 보폭을 넓게 하고 속도를 올렸다. 우리는 서로 말도 나누지 않고 묵묵히 산을 올랐다. 등에서는 땀이 배어 나왔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음악 소리는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드디어 산악자전거 남자를 따돌린 것이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그런데 산악자전거는 또다시 힘을 내는 눈치였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것이 산길의 경사가 완만해졌다. 경사가 완만해지자 산악자전거는 보란 듯이 속도를 올려서 우리를 바짝 따라붙었다.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는 우리가 우세했다. 결국 산악자전거와 우리는 마치 경주라도 벌이는 것처럼 서로 견제하며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육체적 한계에 부딪혔다.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어떻게 ' 도구를 이용하는 인간', 그것도 바퀴를 이용하는 인간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완만한 길이 나타나자 산악자전거는 신나게 속도를 내며 우리를 추월했다. 우리는 산악자전거 꽁무니를 쫓아가며 Touch By Touch가 London Boys로 바뀌는 것을 들어야 했다. 소음은 더욱 심해졌고 산악자전거 남자의 텐션은 더욱 높아진 듯 꿀렁거림이 격렬해졌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산을 오르고 있자니 이것은 힐링이 아니고 고문이었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내면서 산악자전거 남자를 원망스럽게 흘겨보았다. 남편이 도저히 안 되겠다며 차라리 쉬었다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옆에 보이는 정자에 가서 앉았다. 물로 목을 축이고 등산화 끈도 다시 조였다. 개망초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 사이 산악자전거는 조금씩 멀어져 갔고 음악소리도 자연히 작아졌다. 산악자전거와 본의 아니게 한판 레이싱을 벌인 우리는 땀범벅이었고 꽤나 지쳐 버렸다. 평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걸었으니 단단히 운동을 한 셈이었다. 


  땀을 식히고 천천히 산을 오르다 보니 산악자전거 남자도 벤치에서 쉬고 있었다. 그는 헬멧을 벗고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역시 신나는 음악이 그의 곁에서 쿵쾅거리며 울려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남자인가 싶어 흘끔거려 보니 나이가 중후해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티셔츠가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고 키는 작았는데 몸은 무척이나 다부져 보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의 머리는 가발인 것 같았다. 머리숱이 어색할 정도로 많은 데다가 옆 부분이 뚜껑을 얹어 놓은 것처럼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산악자전거 남자를 지나치고 올라가는데 남편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 저 사람 나이가 얼마나 될 것 같아?"

" 글쎄, 얼굴만 봐서는 모르겠는데 아마 우리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 아니야, 저 사람 아무 우리 또래일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대답했다

" 저 사람이 듣는 음악들이 우리가 어릴 때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듣던 음악이잖아. Touch By Touch 하고 London Boys 하고 다 그 시절 음악들이야. 즐겨 듣는 음악을 보면 그 사람의 나이 때가 대충 나오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저 남자도 결국 우리 친구라는 거지. 우리 친구 아이가"

남편은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를 읊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여유를 되찾고 다시 산길을 올랐다. 생각해 보니 산악자전거 남자도 우리와 비슷한 동년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전에 느꼈던 짜증과 분노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 아저씨도 평범한 중년의 남자였을까. 삶에 찌들어서 평일이면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고 주말이 되어서야 숨을 돌리는 그런 남자, 주말이면 스피커를 털어놓고 산악자전거를 타면서 청계산 자락을 달리는 남자, 어쩌면 머리숱도 다 빠져 버려서 텁수룩한 가발을 쓰고 페달을 열심히 밟는 중년의 남자 말이다. 

     그 남자도 나름 사람들 없을 때 산에 오르기 위해서 새벽에 나온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그런 생각을 요즘 부쩍 자주 해 보게 된다. 생각과 가치관이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충돌 없이 살아가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나저나 산악자전거 남자는 이번 주말에도 옛골에서 매봉으로 가는 코스를 계획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나와 남편은 당분간은 청계산 쪽으로는 가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추억의 롤러스케이트장 음악이라고 하더라도 조용한 산속에서 듣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새로운 코스를 뚫어야 한다. 산악자전거 남자와 다시 산속에서 해후하는 우연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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