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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with an E May 22. 2024

결국은,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왜, 안 해도 될 말을 해요?


어느 날, 아이는 꾹 참던 말을 뱉었다. 

엄마가 화가 났으니 대답하지는 아니더라도 가만히 듣고 있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반항이라기보다는 진심으로 궁금해 묻는다고 했다. 

"엄마는 왜, 안 해도 될 말을 해요?"


아이는 잔소리가 내 기분을 푸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거다. 

나는 그걸 드러낼 만큼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거다. 

아이는 자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소리이거나 제 책임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라면 수용할 의향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말은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우리의 관계를 어그러지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도 그것을 눈치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금세 오랜 시간 내가 들었던, 절대 따라 하고 싶지 않은 말법이 방언처럼 터졌다. 


순간순간, 아차! 싶어어 수위를 조절해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입을 닫는 것만이 답인, 조절불가의 영역이었다. 

아이는 그걸 멈추라고 나를 막아선 거다. 다행이다. 


둘 중 한쪽은 멈춰야 한다    출처) 픽사베이



할 말을 분별하고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삼키는 일, 굳이 내뱉어 좋을 것도 없는데 관성처럼 툭! 튀어나오는 말법을 고치는 일은

내가 어른엄마가 되려고 가장 공들이는 일이다. 


나는 좋은 언어를 물려받지 못했다. 

서로의 약점을 농담 삼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띄우고

반어적으로 말하며 속내를 드러내고 낯간지럽다며 칭찬하는 일에 서투른 어른들, 서로의 짐이 되는 친척들 안에서 익힌 언어는 인간관계에서 이따금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도 사회생활에서는 조심하려는 의식이라도 챙기니 망정이었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무방비로 내 언어에 상처받았다. 

그런 사람을 아내로, 엄마로 가진 당신들의 운명을 탓해야지! 하는 태도로 제법 오래도 살았다. 

너무 미안하고, 너무 미안하다. 


그러다 첫째 아이의 사춘기와 늦둥이 막태의 탄생이 맞물리면서 큰 아이는 내 말의 의도를 묻기 시작했고, 

막내에겐 진심의 사랑으로 전하는 솔직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막내에게 하듯 큰 애에게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겨우 십여 년 산 아이를 마치 내 또래인양 대했던 나의 과오를 바로잡으려고 나는 큰 아이에게 거꾸로 돌아가는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나와 같은 언어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1) 잘못하면 무조건 그 즉시 사과하기 

2)  지나간 잘못이 생각나면 또 사과하기

3) 비난의 말은 글로 쓰고 가능한 말은 정제하려고 노력하기

4) 정신줄 놓게 되면 아이에게 '엄마, 나가'라고 말하라고 부탁하기

등을 실천했다. 


물론, 수없이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이전의의 언어는 나에게서 멈춰야 한다. 

사실 맘과 다른 언어를 내뱉으며 사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냥 맘을 솔직히 표현하고, 질문하고, 안 되겠다 싶을 땐 말을 뱉지 않으며 사는 게 훨씬 더 정갈하다. 

소설 쓰며 넘겨짚지 말자, 질투 나면 차라리 부럽다고 말하자, 좋지 않은 말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관계의 우선순위를 조정하자  등 노력을 하면서, 고삐없이 날뛰던 나의 말은 차츰 쓸만한 쪽으로 변해갔다. 


오랫동안 그런 언어를 물려준 부모를 원망했다. 

그런데, 그런 말도 결국은, '다 사랑해서' 그런 거란다.

그런데 그 '진심'을 어린아이들은 알 수가 없다. 진심을 아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때론 돌이킬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부디, 할 말을 잘하는 어른인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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