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정신없고, 사람 많은 서울의 매력
학창 시절을 대전에서 보낸 나는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지방에 산다. 그런 친구들이 서울에 들르면 꼭 한 마디씩 하는 말. 서울은 왜 이렇게 사람이 많고 복잡하냐는 것. "난 서울에서는 절대 못 살아. 답답하고 복잡해서 싫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난 그저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 말을 되뇌곤 했다.
'바쁘고, 정신없고, 사람 많은 거.
그게 서울의 매력인데 그걸 모르네.'
난 서울이 좋았다. 특히 내가 원하는 직업이 서울에만 존재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상경해야 했다. 하지만 서울은 나란 존재를 쉽게 허락지 않았다. 아무리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봐도 떨어지는 나날의 연속. 스무 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즈음, 나는 인생에 큰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취직이 되지 않아도 돈이 없어도 괜찮으니 일단 서울에 집을 꾸리자는 것. 어렵사리 부모님을 설득해 단칸방에서 친구와 첫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취직에 대한 보장도 다음 달 생활비는 물론 월세 낼 돈도 없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빛이 보이지 않는 인생을 살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하늘이 도운 건지, 내 결심이 빛을 발한 건지. 상경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원하는 회사에 취직이 됐다. 매번 떨어지던 내가 최종적으로 가장 원하는 회사에 취직이 된 건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다.
그래서일까. 난 유난히 서울이 좋았다. 막다른 길에 주저앉았을 때 길을 열어준 것도 서울이었고 갇혀있는 문화에 익숙한 내게 열린 문화를 보여준 것도 서울이었다. 바쁘고, 정신없고, 사람 많은 지옥철도 내겐 낭만이었다. 어느덧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7년째. 이제는 안다. 마냥 좋아 보였던 서울이 늘 곱디 고운 꽃길만 열어주진 않는다는 걸. 매섭고 뾰족한 자갈길을 더 많이 보여주고, 서울에서 밥벌이를 하려면 쉼 없이 치열해야 하고, 지옥철은 낭만이 아닌 현실이며 매일 스미고 받아들여야 할 무한 경쟁.... 그 자체라는 것을.
희망과 절망, 관심과 무관심이 함께 도사리는 잔혹한 도시 서울. 하지만 그럼에도 난 서울.... 이곳이 좋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좋음과 나쁨이 내 안에 '서울'이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하루는 좋음이 커지기도 하고 때론 나쁨이 좋음을 잠식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서울은 변덕스럽지만 미워할 순 없는 오묘한 존재다.
오랜만에 방문한 연남동은 예전보다는 확실히 세련된 느낌이다. 2~3년 전만 해도 동네 주민의 다소 촌스런 가게가 전부였다. 요새는 홍대 자릿세를 견디지 못한 젊은 자영업자들이 하나 둘 연남동으로 옮겨오기 시작했고, 그들의 손을 타 동네는 한층 젊어지고 유니크해졌다. 그것은 한편으론 씁쓸하지만 아직 70%밖에 변화되지 않은 연남동의 애매한 분위기는 나를 꽤나 흥미롭게 했다. 몇 년 전과 다름없는 평범한 동네인데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니 숨어있는 카페와 선술집이 꾸준히 얼굴을 드러낸다. 어째 숨은 그림 찾는 기분. 머지않아 이 소박하고 정겨운 동네도 새로운 카페, 레스토랑, 선술집 주인의 손길로 탈바꿈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그 어느 동네 부럽지 않은 아기자기한 매력이 옛날의 연남동과 미래의 연남동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늦은 저녁, 친구와 연남동을 산책하며 다음엔 숨어있는 선술집에서 한 잔 하기로 했다.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연남동이 더 새로워지기 전에. 서울이 더 야박해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