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풀이 본능 + 복수의 심리학 + 복수의 심리학

by 연잎

< 화풀이 본능 > 데이비드 바래시, 주디스 이브 립턴. 명랑한 지성

< 복수의 심리학 > 마이클 맥컬러프. 살림 2009

< 복수의 심리학 > 스티븐 파인먼. 반니 2018



1. 복수의 아름다운 얼굴


“부숴버릴 거야.”


이 대사를 기억하시는지?

살짝 충혈된 분홍빛 눈동자와 가득 고여 곧 흘러내릴 듯한 눈물과 또박또박 단호하게 움직였던 붉고 예쁜 입술과 깜빡이지도 않는 채 레이저를 쏘아대던 검은 눈동자. 그 단아한 얼굴 속에서 나온 그 무섭고도 짜릿한 표정을 못 본 사람은 있어도 보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뒤 다 뗀 짧은 그 한 마디.


“부숴버릴 거야.”



이것이 바로 복수다. 이것이 바로 복수의 얼굴이다. 한 치의 물러남도 없는 단호함과 그간의 온갖 감정을 다 담아내는 그 눈, 코, 입. 그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얼굴이 바로 복수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복수의 가치이다. 그 장면을 보고 우리가 느꼈던 속 시원한 쾌감과 짜릿한 자극,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이 바로 복수의 가치이다. 그런 복수를 목격하고도 감동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수를 온몸으로 연기한 배우 심은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복수극에 열광한다. 안방 드라마 역사의 새로운 포문을 열었던 저 <청춘의 덫>에서부터 “너나 잘하세요.”라는 또 하나의 명대사를 낳은 영화 <친절한 금자 씨>, 복수가 복수를 낳아 대를 이어 불행으로 치닫는 인간들을 징하게 그려낸 미드 <왕좌의 게임>까지. 나아가 서양 서사의 뿌리인 그리스 로마 신화 또한 끊임없는 연쇄 복수극이다. 이에 기반한 다종 다양한 복수극들이 지금도 스튜디오에서 케이블에서 넷플릭스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온 지구에 전파되어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있다. 이렇게 마음을 빼앗기면서도 복수가 무엇인지, 왜 우리는 복수극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지, 도대체 복수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 문제는 화풀이




<화풀이 본능>은 복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보복, 화풀이와 비교하고 있다.


보복은 당한 고통을 가해자에게 즉각적, 직접적으로 반사하는 것이다. 당한 즉시 그 자리에서 갚아주는 것이다. 한 대 맞으면 바로 한 대 때리는 식이다. 무의식적인 반사 행위이거나 즉각적인 정당방위이기에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


복수는 분노를 곱씹고 숙고한 다음에 행하는 앙갚음이다. 당함과 앙갚음 사이에 시간을 두는 것이다. 한 대 맞았다고 바로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며칠 동안 생각하고 피해 내용을 파악한 후, 강력한 한 대, 내지는 몇 배의 고통을 되돌려줌으로써 상대방이 더 이상 대응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복수는 식혀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 같다는 시칠리아 속담이 있듯이.


문제는 화풀이다. 화풀이는 가해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이 당한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다. 보복이나 복수를 할 수 없을 때 화풀이를 하게 된다. 이 화풀이가 가진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든 책이 <화풀이 본능>이다.


진화생물학자 남편과 정신과 의사 아내가 공동 집필했다. 두 사람은 재혼 가정이었는데 작은 일도 서로 참지 못하고 일상적으로 싸우며 지내던 중, 남편의 아이는 친엄마에게 보내고 아내의 아이는 교통사고로 잃게 되어 둘 사이에서 낳은 막내 하나만 남게 되었다.

이후 아내는 분노, 두려움, 우울로 절망 속에 살다가 틱낫한의 책을 읽으며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되어 ‘고통 최소화의 원칙’을 생각해냈다. 뜨거운 감자를 타인에게 던지듯 자신의 고통을 더 이상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고통을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집필한 책이다. 작가가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작업은, 이 분노와 고통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이것은 개인만의 문제인지 사회의 문제인지 인류라는 종의 특징인지를 탐색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결국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화풀이의 역사를 파헤치는 것에 이르게 된 것이다. 유대인이 처음 만들었지만 결국 그들 자체가 최대 피해자가 되어버린 희생양 의식부터, 미국 군중 폭력, 나치와 발칸에서 벌어진 인종 청소, 911과 그 대응, 세계 구석구석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수많은 폭력과 처형 사건 등 구체적 사례들을 다루고 있다.



3. 복수할 권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바로 이 화풀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상사에게 당한 모욕을 집에 와서 아내나 자식들에게 푸는 가장 → 그런 아빠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당해서 억울한 마음을 같은 반의 약한 친구를 괴롭힘으로써 푸는 중학생 → 괴롭힘 당한 친구는 집에 와 동생을 때리고 → 형에게 맞은 동생은 억울한 마음이 켜켜이 쌓여간다.


이 정도의 연쇄라면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저 고리의 중간중간 수많은 극단적 선택과 씻을 수 없는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남편에게 맞아 죽는 아내, 맞는 것을 피하다가 추락사를 하는 아내,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을 독살하는 아내, 엄마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아빠를 폭행하는 아들과 딸들이 있다. 괴롭힘과 왕따를 당한 중학생이 한 해에도 몇 명이나 자살을 한다. 부모에게 폭력을 당한 많은 아이들이 자살을 한다. 기사화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 청소년 1,000명 중 최소 한 명은 매년 자살을 한다. 또 청소년기 내내 참던 자식이 성인이 된 어느 날 그동안 쌓인 분노가 임계점을 넘게 되면, 부모를 공격하게 되고 그 결과 치명상을 입히기도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그 자식은 감옥에 간다. 태어나서 스물이 되기까지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집에서 살았는데 성인이 되자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 비극의 연쇄는 다 화풀이에 기인한다. 저 고리의 발단인 가장이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고 직장 상사에게 복수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가해자에게 당한 고통을 강력한 방법으로 확실하게 돌려주는 것을 상상해보자. 따로 불러 경고를 준다거나, 모두가 지켜보는 사무실에서 정당하게 이의제기를 하거나, 상사가 저지른 잘못을 찾아내 자신이 당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모욕을 주거나, 상사의 잘못을 조목조목 적어서 메일을 보내는 등 어떤 방법이든 좋다.


이렇게 해서 이 가장이 직장을 잃게 될까? 더 많은 모욕을 당하게 될까? 아님 직장 상사의 태도가 개선되어 예의를 지키게 될까? 그 결과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지킨 이 가장은 향후 어떤 일이 생기든 나름의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다. 가족에게 화풀이를 해서 일어나는 비극보다 직장을 잃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서 오는 비극이 더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복수를 해야 한다. 아, 이미 크고 작은 복수를 하면서 살고 있다. 대처, 대응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크게 보면 그것들 모두 다 복수다. 우리가 했던 많은 복수들이 그동안의 우리를 지켜준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 많은 복수를 더 지혜롭게 더 현명하게 더 강력하게, 그리고 더 멋있게 해야 한다.



4.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


복수는 공격자들의 두 번째 공격을 좌절시킨다.
복수는 잠재적 가해자에게 물러서라고 경고한다.
- <복수의 심리학> 맥컬러프




우리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고통을 당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당하고도 침묵해서이다. 우리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은 고통당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한 고통에 대해 정당하게 대응해서이다.


‘갑질’이라는 말이 사회적 용어로 사용되기 전에도 갑질은 존재했다. 아니 더 팽배해 있었고 우리는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횡포를 당연히 여겨왔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많은 사회적 담론을 거치면서 갑질에 대해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갑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가진 자와 권력자의 횡포를 범죄시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갑질은 곧 범죄’라는 것에 모두가 수긍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이를 악물고 침묵해야 했던 상황도 이제 “지금 갑질 하는 겁니까?”라는 단 한 마디의 말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갑질이 근절된 것은 아니지만 갑질에 대한 인식은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사회적 움직임이 이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갑질을 당했던 수많은 을들이 SNS로 고발로 여론으로 재판으로, 다양한 수단으로 갑질에 대한 대응, 즉 복수를 했기 때문에 변화된 것이다. 을의 반란과 을의 복수가 우리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나아지면 구성원인 우리의 삶도 나아진다. 좀 더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인간답기 위해,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해 복수를 해야 하는 것이다.



5. 복수의 뿌리는 역사만큼 깊다.



스티븐 파인만은 <복수의 심리학>에서 복수의 계보를 정리하고 있다. 역사와 종교와 문화 속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어쩌면 그 자체가 종교, 역사, 문화의 뿌리일 수도 있다는 전제로 복수를 바라보고 있다. 복수를 싸잡아 죄악시하는 것을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일’이라고 단정한다.

복수의 뿌리(개념), 신의 심판, 종교와 복수, 복수 문학, 눈에는 눈(법률과 복수), 핏빛 명예(파벌 복수), 사적 원한의 끝, 보복과 전쟁, 일과 원한(노동과 복수), 정치 보복이라는 제목의 9개의 장으로 복수의 개념부터 종교, 문학, 법, 파벌, 개인, 노동, 정치와 복수를 연결하여 서술하고 있다.


들어가는 말과 맺는말의 다음 인용 문구만으로도 이 책의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수욕이 원초적 욕망인 데는 이유가 있다.
복수는 개인의 안녕, 영토, 긍지, 명예, 자존감, 신분, 역할을 위협하는 것들을 억제한다. 앙갚음은 부당행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수는 이지러진 평형과 서열을 재설정한다.
복수는 개인 간 암투, 집단의 내분, 노사 분쟁, 내전과 국제전에 존재하는 암묵적 관습법이다. 자아와 공동체의 궁극적 자기 진술이다. 타인의 침범을 막는 방어 수단이자 경고 조치다. 날것 그대로의 정의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복수자 avenger다. - 들어가는 말
용서를 강조하는 윤리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불필요한 죄책감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자가 한 짓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데 사람들은 계속 용서해야 한다고 말해요.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맺는말


6. 그래서 어찌해야 하지?


세 저서 모두 사회적 실천 방안이나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애초에 없다. 덮어두고 외면해왔던 복수라는 덩어리의 덮개를 벗기고 면밀히 살피는 것까지가 이 저서들의 목표이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이 책들의 도움으로 나름의 실천 방안을 세울 수 있었다.

그 세워진 방안에 따라 나의 오랜 난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20년 동안 참고 눈치 보고 망설이느라 해결하지 못하면서 20년 내내 심화되어 온 피해에 대해 드디어 대응할 논리를 발견했고 방법도 찾아냈다. 그리하여 ‘되돌려주기’를 실행했다. 정말 속이 시원했다. 늦어도 너무 늦은 ‘되돌려주기’였다. 진작 했더라면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진작 했더라면 그동안 나와 내 가족을 더 잘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진작 했더라면 상대도 현재의 삶이 더 평화로웠을 것이다. 내가 너무 시간을 끌어서 상대의 노후가 더 고단해진 것이다. 반면, 너무 늦었기에 더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 삶의 질이 한 단계 올라간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지침도 정할 수 있었다.


첫째, 사과를 잘할 것.

살다가 분명 누군가에게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럴 때 상대가 복수를 결심하기 전에 나는 사과를 해야 한다. 말로만 하는 사과,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과가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어떤 사과가 나의 진심을 담을 수 있을까? 그냥 진심이야! 를 외친다고 상대방이 수긍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진심 어린 사과가 갖춰야 할 5가지 요소가 있다. - <복수의 심리학> 맥컬러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진심 어린 사과의 말 - 가령, “정말 미안해.”

② 책임 인정 – 핑계 대지 않기

③ 구체적 설명 – 이유를 명확하게

④ 보상 – 물질적, 정서적 보상

⑤ 약속 - 자제할 것에 대한 맹세


나는 앞으로 이 사과의 5요소를 반드시 지킬 것이다.

나아가 타인이 나에게 사과해야 할 때에도 그 5원칙에 맞게 해달라고 요구할 생각이다.


둘째, 복수를 잘할 것.

나를 공격하고 괴롭히는 것에 대해 참지 않을 것이다.

피해와 상처를 입는다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나아가 용서하라는 조언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현명한 복수의 방법을 같이 고민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수의 빈도를 최소화할 것.

작은 일에도 복수를 남발하는 것은 복수의 가치를 떨어뜨리므로 어지간한 일은 그냥 넘어갈 것이다. 모아두었다가 충분히 소화가 된다면 그냥 버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히 살아난다면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할 것이다. 이렇게 충분히 삭히면 매우 강력하고 멋진 복수극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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