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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헌 Feb 14. 2024

무제

그녀의 아빠 이야기

무슨 이유에서 퇴사를 한 그녀는 매일 저녁 엄마가 주는 간식을 먹는다. 엄마는 직업이 없다.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그녀가 어렸을 때 엄마는 잠시 백화점에서 고추장을 판매하는 일을 했었는데 남편의 반대로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고졸인 엄마는 대학교 공부를 해보기 위해 사이버 대학교에 원서를 내고, 합격을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녀는 엄마를 위해서 강아지 그림이 그려져 있는 포스트잇을 친구들에게 건네며 엄마의 대학 축하 메시지를 적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아빠는 엄마에게 크게 화를 내며 “네가 무슨 이제 와서 대학이야?”라고 소리쳤다. 그 모습은 그녀도 보고 그녀의 동생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의 그 한 마디에 무너져 내리는 엄마의 모습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서 수거한 포스트잇을 전부 찢어 버렸다. 그녀는 아빠를 싫어하게 된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아빠에게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빠가 냉장고 문을 오래 열고 있으면 “발리 닫아!”라고 소리를 질렀고, 아빠가 배가 고프다며 엄마에게 다가오면 엄마는 “알아서 챙겨 먹어!”라고 소리를 질렀고, 아빠가 거실 소파에서 잠들면 엄마는 발로 아빠의 발을 툭툭 차며 “들어가서 자!”라고 소리를 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럴 때면 그녀도 그녀의 동생도 엄마와 함께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생각했다. ‘아빠도 아프긴 할까? 아빠는 과연 1에서 10중 얼마나 아플까?’

그녀는 안다. 그녀의 동생도 안다. 엄마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이렇게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다가도 아빠가 뭐 때문에 갑자기 화가 나서 빽 하고 소리를 지르면 엄마는 금세 다시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녀는 엄마와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직도 아빠가 무섭지?” 엄마는 스물둘, 처음 아빠를 만났던 그 겁 많고 여린 얼굴로 대답한다. “응. 결혼했을 때 처음부터 내가 네 아빠한테서 기가 죽고, 그 앞에 서면 주눅이 들었었는데 그게 평생을 가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엄마는 딸에게 그렇게 대답하기 쉽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아빠가 싫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


 


오늘은 엄마가 큰 집에 명절 선물로 보내려던 국산 아카시아 꿀 세 큰 술에 바삭하게 구운 가래떡을 간식으로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엄마에게 물었다. “이거 큰 집에 가져가려던 꿀 아니야? 다른 거 가져가게?” 엄마는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한다. “네 아빠가 꿀 말고 다른 거 가져가재.” 그녀는 알겠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한다. “한우? 자식들이나 먼저 먹이고 남 주라고 해.” 이번에는 엄마의 얼굴에서 ‘그렇게 아빠 미워하지 말아’라는 표정이 보인다. 그녀는 오늘도 아빠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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