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점 빼러 간다.
내 얼굴에는 여러 개의 점이 있다. 큰 점, 작은 점, 동그란 점, 찌그러진 점... 눈 아래 있는 점, 볼 가운데에 있는 점, 입술 밑에 있는 점, 귀 밑에 있는 점.. 이 중에 내가 좋아하는 점은 볼에 있는 큰 점이었다. 이게 나의 상징과 같은 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종 증명사진이나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포토스튜디오에 가면 볼에 있는 그 큰 점은 절대 포토샵으로 지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 딱 서른 살이 된 후부터 삼십 년 동안은 점이 있는 채로 살아왔으니 앞으로의 인생은 점 없이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과에 가면 빼고 싶은 점의 위치에 마취약을 발라준다. 아니, ‘얹어준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리고 보통 20분 정도 있다가 시술실로 들어간다. 시술실에 들어가서 좁다란 침대의 형태를 한 판때기(?)에 누워서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동안 간호사선생님은 내 얼굴 위에 군데군데 얹어진 마취약을 솜으로 닦아내고, 내 눈 위에 ‘오징어 눈알’이라고 불리는 고무로 된 눈가리개를 콧잔등 위에다가 올려준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오면 내가 빼고자 하는 점에 레이저를 쏘아댄다. 타다타다타다다닥. 느낌은 마치 안 아픈 바늘로 콕콕콕 찌르는 느낌이다. 별로 안 아프다. 그런데 아예 안 아프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자극이다. 시술이 끝나면 간호사선생님이 시술 부위 위에 재생스티커를 붙여준다.
시술을 마치고 나오면 수납을 한다. 큰 점은 만 원에서 만오천 원, 작은 점은 오천 원이다. 나는 한 번 갈 때마다 거의 육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온다. 그리고 바로 집에 가는 게 아니라 약국에 한 번 들러야 한다. 약국에 가서 재생스티커를 사고, 이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하루에서 이틀에 한 번씩 시술 부위에 교체하며 붙여줘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깔끔하게 붙인다고 해도 누가 봐도 ‘엇 저 사람 점 뺐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얼굴이 된다. 그래도 나는 그 얼굴로도 회사에 잘 다녔었다. 사실 요즘엔 마스크 쓰는 게 일상이니까 마스크를 쓰면 좀 가려지기도 한다.
점을 빼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동네 피부과 중에 괜찮다고 소문난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엄마랑 친한 동네 아주머니 중 이런 쪽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의 추천을 받아서 이 피부과에 다니게 되었다. 매번 피부과에 갈 때마다 손님(?)이 많은 걸 보면 장사(?) 아니, 실력이 좋은 의사 선생님의 피부과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처음에 난 그의 실력을 의심했다. 작년 9월, 피부과에 와서 상담을 받았다. 내 볼과 귀 밑에 있는 진하고 큰 점을 비롯해 얼굴에 있는 모든 점을 다 빼고 싶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은 내 얼굴에서 제일 큰 두 개의 점을 가리키며 “이건 20회는 시술을 받으셔야 하고요, 20회를 진행한다고 해도 완전히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점은 한 달에서 한 달 반 주기로 빼야 한다는 것... 그러면 내가 한 달마다 꼬박꼬박 와서 20회를 뺀다고 해도 적어도 2년은 족히 걸린다는 사실... 그런데 나는 23년 9월 초에 처음 점을 뺐고, 그 이후로 11월 말 한 번 그리고 23년 1월에 세 번째 시술을 받으러 간다. 나 서른셋 전까지는 다 빼겠지? 그래도 시술을 두 번 받았다고 점이 조금 작아진 것 같기도 하다. 이제 회사도 안 다니니까 꼬박꼬박 가자.
이 작은 점에도 내가 주는 애정의 크기가 다 달랐다. 어떤 점은 흔적도 없이 빼버리고 싶고, 또 어떤 점은 눈에 잘 띄게 더 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삼십 년을 내 상징이라고 생각하며 거울을 볼 때마다 흐뭇해했던 이 큰 점도 이제는 스무 번의 귀찮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말끔하게 빼버리고 싶은 점이 되었다. 그래, 한 번에, 한 방에 빼버리는 것도 참 좋겠지만 그래도 평생 가지고 살아왔던 이 점이 점일지라도 서서히 안녕하자. 오늘도 나는 점을 빼러 간다. 점을 빼러 가면서 나는 이별을 배운다.
2024년 1월 10일 수요일, 아침에 쓴 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