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미술 전시, 그 의의와 한계
따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현대 미술로 넘어오면서 ‘모방’이라는 단어를 벗어날 수 없다. 더 이상 새로운 미술은 생겨나지 못한다. 이제 얼마나 기존의 미술을 잘 재해석했는지가 중요한, 그런 시기가 되었다.
그렇기에 ‘레퍼런스’의 중요성은 날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작가들이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고, 어떤 책, 철학가로부터 영향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평단에 의해 비판 받는 작가는 레퍼런스를 단순히 보여지는 껍데기로민 들고오며, 반대의 작가들은 스스로 체화한 레퍼런스를 자연스럽게 섞어 작품으로 소화해낸다.
그런 점에서 70년대 실험미술 작가들에 대해 약간의 슬픈 지점이 바로 ‘모방’에서 멈췄다는 것이다. 특히 2024년 가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강소의 작품을 모아 전시를 진행한 <<풍래수면시>>가 나에게 그러했다.
특히 두 개의 작품군이 ‘모방’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넘기지 못했다는 느낌을 줬다. 우선 팝아트의 영향을 이야기하는 부분의 경우 이강소의 실크스크린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기획자는 관람객을 설득한다. 다만 실크스크린에서 우리는 워홀의 그림자를 느끼지 못한다. 액션페인팅 작품 모두에서 폴록의 그림자가 보이진 않듯이, 이강소의 실크스크린은 방식의 유사성만을 보여주는 듯 하다.
또한 돌을 그림, 사진, 실물이리는 방식으로 보여준 부분 역시 아쉬웠다. 조셉 코수스의 의자가 이야기하는 개념적인 이미지의 차이를 말하고자 한 것처럼 보인 이 공간은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강소가 지닌 돌에 대한 의의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림, 사진, 실물이 지닌 차이를 크게 알려주는 배치 역시 아니었다. 단순히 돌을 이용했다는 내용만을 보여주는 듯 했다.
사실 채화되지 못한 모방은 실험미술 작가들의 슬픈 현실이다. 당시 해외 진출이 쉽지 않고, 단순히 도록 속 이미지만으로 신문물을 접한 작가들은 새로운 미술을 채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대의 서구미술을 알고있는 2024년의 관람객들에게는 단순한 모방으로 읽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실험미술은 국현에서 계속해서 이야기 될 것이다. 모방에서 그쳤을지 몰라도, 서구의 새로운 미술을 끌고 들어온 첫 세대로서 조망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이 작가들의 작품에서 모방이 아닌 어떤 것을 읽어내야하는지, 그리고 껍데기로서의 작품 그 너머의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