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표 Mar 24. 2023

시프티 도입: 출근은 일찍,
퇴근은 늦게?!

약 1년 남짓한 시간을 신입 직장인으로서 일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회사는 아주 "가성비 있게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장"이라는 것과 의외로 소수 인원들의 의사결정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몇 달 전 직장에서 효율적인 근태 및 인력 관리라는 이름하에 새로운 절차가 도입되었다. 바로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시스템인 "시프티"이다.


모바일 버전 예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늘 30~40분 먼저 출근하고 늦게까지 야근하던 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제 드디어 내가 노력한 흔적이 데이터로 낱낱이 기록되겠구나. 이제 다들 알아주겠구나. 하지만 기쁨도 잠시, 퇴근이 아닌 출근 시간만 기록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공지되었다.


대외적인 도입 취지는 느슨해진 출근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었으나 본래 목적은 다른 데 숨어 있었다. 기존의 수평적이었던 상하관계를 '회사답게' 수직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진짜 시프티 실행의 목적이었다. 내가 처음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자유로움"과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회사는 입이 닳도록 그 점을 강조하더니 딱 하나 남은 장점을 이리 거두어가실 줄이야.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건너 건너 들려온 말들에 의하면 회사 구성원간의 편한 관계는 단순히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업무적으로도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다고 했다. 서로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팀장은 팀원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힘들고, 팀원은 팀장이나 선배에게 쉽게 선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내가 직접 겪어본 바에 의하면 우리 회사는 가족다움을 주구창창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젊은 꼰대들의 장이었다. 결국 모든 이유들은 단순 변명이자 명분일뿐, 회사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니 출근부터 차근차근 바로 잡겠다는 의도가 명백했다.


퇴근은 기록하지 않는 점이 그 생각에 부정적인 감정을 더했다. 출근은 정시에 해, 근데 퇴근은 알아서 해. 이 문장 하나에 담긴 소리 없는 압박. 값싸게 노동력 좀 부려 먹겠다는 의미가 너무 대놓고 내포되어 있었다. 역시나 이런 생각을 하는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포괄임금제로 인해 이미 야근하는 동안 우리의 시간은 껌값 취급받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정시퇴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먼저 스타트를 끊어줄 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과정이 악순환처럼 반복되는 것이 일상이었달까?






시프티가 도입된지 한달 가량이 지났을 무렵, 처음엔 낯설어 불편해하던 직원들도 어느정도 익숙해진 듯 보였다. 외관상으로는 그랬다. 익숙해지기만 했다. 효율적인 근태 관리라는 초반의 목표를 고려했을 때는 아무래도 결과상 실패인 듯 싶었다. 출근 시간이 기록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다들 본래 출근시간을 더 앞당겨 20~30분씩 일찍 도착했다.


처음엔 일은 그대로였지만, 출퇴근 시간이 늘어날수록 업무량도 쓸데없이 연장돼 다들 속이 곪아들어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보상심리라고 할지 요즘 미디어에서 그렇게도 언급하는 MZ 세대 특이라고 할지, 조금 일찍 출근한 만큼 정시 퇴근은 아니어도 최대한 야근하기 싫어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려고 노력했다. 누군가는 그런 나에게 말했다. '퇴근'이라는 단어 앞에 '정시'를 붙이지 말라고. 퇴근은 당연한 거라고. 그러니 말을 정정해야겠다. 당당하게 퇴근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렇게 노동자로서 합당한 권리를 찾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했다. 이 당연한 광경이 경영진들의 무슨 심기를 건드렸는지 이번에는 온갖 패널티를 단 규율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어떤 회사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당연히 지각을 하면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패널티라고 하는 내용이 너무 치졸해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라 반발심이 드는 것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해도 광고주가 원하면 밤 11시~12시까지 아니 주말에도 일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는 곳이  바로 우리 회사이다. 심지어 일이 없는데도 윗선들이 안 가고 버티고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퇴근이 늦어진다. 아주 비효율적인 구조이다. 누군가는 집이 멀어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기도 한다. 쓸데없는 야근 문화에서 이런 다양한 경우가 기인하는데, 그렇다면 이를 고려해 어느정도 용인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야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이라는 가정 하에는 말이다.






제 때 출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효율적인 인력 관리라는 명분을 내세운 만큼 그에 걸맞는 경영을 한다면 이해하지만, 감정에 치우쳐 소꿉놀이 하듯 마음대로 회사를 관리하는 것이라면 피고용인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야근 수당 안 줘도 이해할 테니, 퇴근 시간 기록 안하는 것도 이해할테니, 일부러 늦게 퇴근시키려는 것도 이해할테니 적어도 지각했다고 눈치 주는 것은 '최소 2번은 이해해주면 좋겠다'는, 미미한 영향력을 가진 한 노동자의 간절한 호소라고 봐주면 되겠다.


아마 모두들 그렇겠지만 나의 열정이 누군가에겐 단지 돈 벌 수단으로만 여겨진다는 사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억울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동시에 그렇게 커다래보이던 회사가 현실에서는 너무나도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찬다. 동시에 어릴 때 막연히 동경하던 어른들의 세계가 이토록 별 것 아니었다는 것에 허무하다.


어릴적 기대를 무참히 져버린 그 누군가들을 이해한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기억은 추억으로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저 내 소중한 노동 착취의 한 현장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어떤 일이든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다(그만큼 힘들었던 첫 사회생활이었다).


사실 거창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한낱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회사를 구성하고 회사를 위해 돌아가는 톱니바퀴 1이다. 톱니바퀴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대로 돌아간다. 하지만 낡고 달아 더이상 버티기 힘들어질 때는 언제든 멈춰 서 기계 전체가 작동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의 부품에 불과한 존재일지라도 작은 부품 하나 하나마다 부식되지 않게 기름칠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될 터이다.


이 기본적인 원리도 모르는 무지한 이들이 수많은 노동자 위해 군림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세세한 정성을 기울여 부품 하나하나 소중히 대해주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오기를 기다린다. 물론 그런 사회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SNS로 질투를 등가교환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