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일기: 모로코 Morocco 여행 마라케시
마라케시의 중심
자마엘프나 광장 Plaza Jemaa el-Fna
자마엘프나 광장은 마라케시를 비롯해 모로코에서 가장 중요한 장 소중 하나다. 마라케시 어디서든 보이는 쿠투비야 모스크 Kutubiyya 를 찾아가면 그 앞에 자마엘프나 광장이 있다.
‘자마엘프나’라는 이름에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는데 자마 Jamaa는 ‘축하’,’모스크’라는 뜻으로 예전에 파괴된 모스크의 부분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되고 프나 Fna는 ‘죽음이나 종말’ 혹은 ‘마당’을 뜻하는데 광장과 같은 열린 공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모임’, ‘집합’과 같은 의미와 함께 ‘죽음의 집회’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이는, 1050년 광장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대학살에서 차용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마라케시는 이 자마엘프나 광장을 둘러싸는 모양으로 형성되었고 마라케시의 모든 골목들은 광장으로 향해있다. 메디나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광장은 자연스럽게 마라케시의 중심지가 되었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광장이 등재되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 또한 인정받았다.
이른 아침의 자마엘프나
7월 말,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은 아침 일찍부터 광장을 뜨겁게 달궜다. 좁은 골목을 지나 광장에 들어서면 저 멀리 높게 솟은 모스크의 탑이 보였다. 드넓은 광장에는 수레에 물건을 놓고 파는 사람들과 그 수레를 끄는 소 그리고 마차를 끄는 말들이 띄엄띄엄 서있었다. 나무 하나 없이 광장에 바로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걸어야 했다. 더운 날씨에 에너지를 아끼려는 듯 동물도 사람도 모두 천천히 움직였다.
모로코 여행 메이트였던 버딘, 스티븐과 함께 광장에 처음 갔던 날 버딘이 오렌지 주스를 적극 추천했다. 주문을 하면 예쁘게 익은 오렌지를 골라 그 자리에서 직접 짜주었다. 얼음 하나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주스는 시원했고 새콤달콤한 오렌지의 맛이 더위에 지쳐있던 몸을 깨워주는 것 같았다.
현지 사람들도 즐겨 마셔서 가격이 아주 저렴했는데 몇 백 원 되는 가격에 달콤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어 잠깐 행복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광장에서 갈증을 달래주는 고마운 음료였다.
해가지고 난 뒤 자마엘프나
해가지고 난 자마엘프나 광장에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던 오렌지 주스 파는 가게,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 가게들이 사라지고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 광장을 채워나갔다.
뱀을 목에 두른 사람, 뱀 앞에서 피리를 부는 사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아이들이 광장 입구를 차지했다. 좁은 골목을 지나 광장에 다다를 때면 멀리서부터 웅성웅성하는 사람들의 소리, 공연을 하는 전통 음악소리 그리고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코란 읊는 소리가 한 데 뒤엉켜 다가가는 내 마음을 매번 설레게 했다.
하지만 하루는 흥겨운 음악에 신이 나서 카메라를 들었는데 무섭게 달려들어 돈부터 내놓으라며 다그쳤다. 사진도 찍고 노래도 좀 듣다가 돈을 줄 생각이었는데 크게 놀라 얼마인지 보지도 못하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꺼내주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화도 나지 않았는데 조금 익숙해진듯한 마라케시에서 다시 긴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광장 중심에는 순식간에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 같은 음식 좌판이 가득했다. 음식 좌판을 밝히는 불빛과 요리하며 피어오르는 연기도 소리와 함께 광장을 뿌옇게 덮고 있었다. 이 야시장에서 염소 뇌를 먹는 걸 어느 프로로 봐서 그런지 야시장의 음식들이 두려웠다. 그래도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그 사이를 걸었는데 얼핏 봐도 무서운 재료들이 쌓여있어 도전하지 못했다. 복잡한 야시장 사이를 동양 여자 혼자 걸어가다 보니 불편한 시선들이 따라와서 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유쾌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마라케시의 자마엘프나 광장에 갔었다는 것 그리고 야시장을 둘러보고 왔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기분 좋게 해준다. 자마엘프나 광장의 야시장은 내가 마라케시를 꿈꾸었던 이유였기 때문이다.
로컬 이야기
한밤중이었지만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해 혼자 걷는 게 두렵지 않았다. 야시장을 둘러보고 거닐다가 마차를 탔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마차를 태워줬던 아저씨는 광장을 한 바퀴 다 돌고 난 후에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장 궁금했던 이슬람의 특징에 대해 물어봤는데 그들이 믿는 신념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그분이 해주셨던 이야기가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누구든지 자신이 믿고 추구하는 세계를 지키기 위한 마음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알라를 섬기는 사람에게 들은 그들의 이야기라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모로코의 전통 의상을 입어보고 싶다는 내 말에 친구분의 가게에 데려가 젤라바를 사는 걸 도와주셨다. 검은색과 하얀색 두 개를 샀는데 사하라 사막과 셰프샤우엔을 여행했을 때 잘 입었다. 나중에 이 에피소드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내가 가격도 많이 지불했고 그 아저씨가 분명 가게에서 커미션을 받았을라고 했다. 조금 씁쓸하기는 했지만 로컬 이야기를 들려준 값이라 생각하니 큰 손해는 아닌 거 같았다.
꿈의 장면
마라케시에서의 마지막 날, 함께 했던 스티븐이 먼저 모로코의 다른 도시로 떠났다. 나는 마라케시 근교 에싸우이라로 반나절 여행을 다녀온 후 마라케시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자마엘프나 광장으로 나섰다. 모로코 여행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준 마라케시에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광장 안쪽은 전 날 깊숙이 둘러봤고 이날은 멀리서 내가 상상하던 모습을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카페를 찾아 Hôtel Restaurant Café de France의 테라스에 자리 잡았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테라스에 올라갔다. 테라스의 끝으로 향할수록 내가 오랜 시간 마음속에 간직했던 장면이 서서히 드러났다. 아프리카 땅에 있는 이곳에 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눈앞에 일렁이는 자마엘프나 야시장의 모습이 있었다. 꿈의 장면을 마주하자 큰일을 이룬 것처럼 행복해졌다.
아름다운 이 장면을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조용히 광장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이렇게 광장에서 마라케시의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올라, 아델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