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붕붕 Aug 09. 2021

브런치 초심자의 행운

갑자기 찾아온 조회수 20,000의 행운, 그래도 초심을 잊지 말아요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겨 잠드는 바람에 느지막이 눈 뜬 오늘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제일 먼저 머리맡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가 떠 있는 알람을 보고 '내가 잘못 본거 아냐?'라는 생각과 동시에 잠이 확 깼다.


'내 글이 조회수가 3000이라고?'


카지노나, 낚시나, 주식에서만 찾아오는 줄 알았던 '초심자의 행운'이, 브런치를 이제 막 시작한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중국 현지 시간 오후 6시의 조회수.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은 숫자가 보인다. 



어제저녁, 다섯 번째 글을 올렸다. 주제는 '등산'. 이틀 전 토요일, 오랜만에 다녀온 등산은 역시나 힘들었지만 좋은 영감을 주었고,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기고 싶어 피로가 덜 풀린 몸을 억지로 이끌고 카페로 가 몇 시간을 끙끙댄 끝에 '발행' 두 글자 버튼을 눌렀다.


내 브런치는 아직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됐다. 8월 5일, 그러니까 지난주 목요일에 승인을 받아 그날 저녁, 심사를 위해 작성했던 글 세 편을 나란히 올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한 편, 어제 한 편. 이렇게 5일 동안 총 다섯 편의 글이 올라와있는, 누가 봐도 이제 막 시작한 초보 작가(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의 작은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 조회수가 높게 나올 리가 없다. 구독자도 갓 10명밖에 안 되니, 그 10명이 모두 읽어줘야 조회수가 가까스로 10이 되는 셈이다. 첫날엔 통계를 볼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가 이틀 뒤쯤 알게 되었다. 한 번 클릭해 본 뒤론 묘하게 신경 쓰여 자꾸만 누르게 되는 마법의 통계 버튼. 어제도 마찬가지로 잠들기 전 마법에 빠져 통계를 보곤 남자 친구에게 투정 어린 한 마디를 건넸다.


-조회수가 잘 안 늘어나네. 10-30 정도밖에 안 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조회수를 신경 써. 아직 일주일도 안 됐잖아. 숫자에 연연하지 마. 네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를 생각해봐. 너는 네 이유만 생각하고, 꾸준히 쓰면 되는 거야.



처음엔 '브런치 통과만 되어도 참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너의 이야기들을 우리만 알기엔 아쉬우니 글로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친구의 제안을 냅다 받아들여 학교 졸업 후 생전 처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제대로 글을 배워본 적도 없고, 화려하게 글을 쓸 줄 아는 기술도 없으니 그저 진심을 담아내자고만 생각했다. 중국행을 도전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까짓꺼 안 되면 다음에 또 준비해서 도전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한 번에 승인을 받게 된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브런치의 문을 열고 들어와 여기저기 둘러본 첫날. 너무 작아졌다. 나 스스로가.


애초에 글 쓰는 직업도 아니고, 그다지 잘난 사회적 직급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단지 다른 사람보다 하나 더 갖고 있는 건 '남들보다 조금 더 아팠던 실패의 추억'밖에 없는 상황에서, 브런치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 분은 어떻게 이런 찰떡같은 표현을 썼을까', '이 분은 어떻게 이런 세련되고 우아한 단어를 사용할까', '이 분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이렇게 크게 성공했을까'와 같은 감탄사가 절로 이어졌다. 


그러니 이렇게 훌륭한 수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부족한 나의 글을, 앞으로 좋아질 거라 믿고 구독을 눌러준 열댓 분이 참 감사한 셈이다. 10명이 1분만 내 글 읽기에 할애해도 총 10분이니, 누군가가 나에게 10분이란 시간을 할애해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그러니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잠들었다. 그런데 눈을 뜨니 조회수가 3000이라니. 




눈곱도 떼지 않은 채 핸드폰 통계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니 어제 올린 등산 글에서 유입된 조회수였다. 어딘가에 올라온 것 같았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일단 배고프니 밥을 먹자'하고 늘 그랬던 것처럼 맥도널드로 가서 맥모닝을 먹었다. 먹고 있는데 15분마다 알람이 떴다. 조회수가 4000... 5000... 6000... 


조회수 10이라고 투정 부리면서 잤다가, 아침에 눈뜨고 3000을 보니 마냥 기뻤고, 어느덧 늘어난 숫자 10,000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조회수는 높으나 구독이나 댓글 수는 늘지 않았으니까. 어딘가에 올라와서 클릭은 해보았는데, 다른 글까지는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안 된다는 뜻일 테고. 

(브런치 추천글과 다음 메인에 글이 떴나 보다. 통계를 자세히 보니 대부분은 다음에서 유입되었다.)

친구가 찾아준 브런치 추천글에 올라온 화면. 다음 메인에 올라온 건 나와 친구들 아무도 찾지 못하였다. 


그렇게 잠시 동안 침울해있다가, 지난주 딱 이때쯤 카페에 앉아 심사를 위해 열심히 글을 열심히 쓰던 내 모습이 떠올라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다시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브런치에 도전했던 이유. 어딘가에 이전의 나와 같은 고민이나 상처가 있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그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처음 그때의 마음. 그리고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일단 글 50편을 쓰자'라는 현재의 목표. 이 두 가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



오늘 일은 기분 좋은 해프닝으로 생각하려 한다. 어디 가서 20,000명에게 '제 글 한 번만 읽어주세요'라고 할 수 있겠는가. 클릭해서 30초 동안만 읽었다 해도 10,000분이라는 시간이 내 글에 할애된 것이고, 감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남에게 내 글이 읽힌 소중한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10이든 20,000이든 숫자나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비록 화려하고 수준 높은 글은 못 쓸지라도 진심을 담아서, 나만의 작은 목표를 향해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나아가 보려 한다.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 팀.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당신.

*꾸준히 쓰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등산의 미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