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추석과 국경절 연휴를 기다릴 때쯤, 올 해에도 어김없이 결정의 순간이 찾아왔다. 중국에 더 있을지, 돌아갈지를 결정해야 하는 '재계약 신청'의 순간이.
첫 기본 계약 2년을 마치고 1년씩 두 번 더 연장해서 올 해로 중국 거주 4년째. 현 계약도 내년 2월이면 만료되므로 중국 잔류를 희망하면 이번에 재계약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메신저로 전해받은 서류는 기존과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재계약서 신청 양식이었지만, 마음은 작년과 달리 복잡했다. 이미 올해 초부터 마음속으로 대강의 결정은 내리고 있었지만 실천으로 옮기기까지는 몇 날 며칠의 치열한 고민이 더해졌고, 나는 결국 재계약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사실 중국행은 일종의 도피였다. 한 집 건너 다 아는 좁은 지역과 보수적인 직장에서 이혼 후 겪게 될 타인의 시선과 소문이 무섭고 두려워 그전에 재빨리 어디론가 도망쳐야만 했던 도피. 제법 좋았던 타이밍과 운으로 중국에 가는 기회를 거머쥘 수 있게 되었고, 최소한의 주변 사람들에게만 이혼 사실을 알린 채 중국으로 떠났다. 어쩌면 '도망쳤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새로운 환경은 상처를 치유하기에 좋았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생활하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첫 해에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을, 두 번째 해에는 본격적으로 중국어 공부를, 세 번째 해에는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며 중국 생활을 열심히 즐겼다. 네 번째 해인 올해는 중국 생활 연차에 걸맞은 제법 무게감 있는 일을 맡게 됨에 따라 직장과 집을 전전하며 전형적인 '일에 파묻힌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몇 달 전, 여러 날 동안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운 좋게 빈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었지만 과도한 업무로 피곤한 나머지 집으로 빨리 돌아가서 그저 쉬고만 싶었다. 그렇게 무념무상으로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만약 내년에도 중국에 남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더 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중국에 올 땐 다소 충동적으로 왔을지언정 돌아갈 때까진 그럴 수 없었다. 그때부터 잔류 여부에 대한 기나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었다. 이십 대의 어느 날, 사무치는 외로움에 힘듦을 토로하자 친한 직장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네 옆에 누군가 있어준다고 해서 근본적인 외로움이 없어지는 건 아냐. 너의 외로움을 다른 사람이 해결해줄 순 없어. 스스로 안고 가야 하는 거야." 그 후 외로울 때면 늘 이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말조차 위로가 안 될 만큼 외로운 날들이 있었다. 대부분 가족과 함께 온 직장 동료들 속에서 단신 부임한 나로선 끼기 힘든 가족 모임이나 여행이라든가, 무더운 밤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을 때 언제나 달려올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외로움.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반년에 한 번씩 한국으로 돌아가 빈자리를 가족의 정으로 채워오곤 했는데 그 길이 막혀버렸다. 조금만 더 지나면 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갔다. 또래에 비하면 주름도 많지 않고 흰머리도 없어 염색하지 않는 게 큰 자랑이었던 아빠의 얼굴은 어느새 못 보던 주름이 생겼고, 카카오톡 영상통화 화면에서조차 흰머리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누구 하나 비껴가질 않았다. 한국을 떠날 때 우리 집 막내였던 강아지는 이제 우리 집의 최고령 어르신이 되었고, 먹물을 떨어뜨린 것 마냥 새까맣고 예뻤던 큰 눈엔 점차 세월이 서려 희끗해져만 갔다. 어쩌다 영상통화를 할 때면 가족들의 얼굴에서 지나간 세월을 확인하고는 마음 한편이 싸르르하게 아파왔다.
일에 대한 부분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한국, 중국을 통틀어 가장 큰 일을 맡았던 한 해였던지라 바쁠 수밖에 없었고, 피곤에 찌든 채 집에 돌아와 곧장 침대에 누워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있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내가 가진 역량의 백 프로를 발휘했으니 이젠 떠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 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사람을 위해 비켜줘도 되지 않을까.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나에게도 그때가 온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이제 한국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한국으로 복직 후 다시 마주치게 될 시선과 소문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막상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아직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마음이 제법 단단하게 여물었으니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자그마한 자신감이 어느새 생겼다. 얼마 전, 더 이상 입지 않는 여름옷을 정리해서 한국으로 부쳤다. 마치 내 마음도 함께 박스에 담겨 한국에 이미 도착한 것만 같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약 두 달. 곧 다시 만나게 될 소중한 얼굴들이 유난히도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