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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Jul 18. 2023

진짜 인테리어는 비밀을 만드는 것

마음 이발소

망원동을 40년간 지켰던, 68년 경력의 이발사 할아버지를 위한 은퇴식이 열렸다. 각자의 방식으로 마을 청년들은 할아버지를 사랑했다. 한 망원동 주민은 오랜 이야기가 담긴 일흥 이발소를 인수했다. 새로운 이름은 '마음 이발소'. 그 주민은 바로, 내가 존경하는 MBC 아나운서 방현주 선배님이다. 망원동의 터줏대감이던 일흥 이발소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양한 언론사가 취재를 나왔다. 방 선배님은 기자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이 소식의 주인공은 분명 할아버지이니 혹여나 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뉴스에 등장하게 된 '주민 방현주'씨였다. 


출처: 연합뉴스


나는 선배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품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깊은 향이 퍼진다. 모두가 축하를 보내던 때에, 선배님은 '얼마나 혼자 애쓰고 있는지'를 물으며 먼저 안아주는 분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는 내가, 왠지 선배님한테 만큼은 풍덩 기대고픈 마음이 든다. 멋진 어른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하루는 선배님의 '마음이발소'를 찾았다. 마음 이발소는 마을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대화를 하는 장소. 선배님은 여기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며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계신다. 


선배님의 말을 빌리자면 마음이발소는 엄마의 자궁 같은 공간이었다. 처음 간 공간에서 익숙한 아늑함을 느꼈다. 지상에서 반칸정도 내려가는 공간, 너무 넓지 않은 평수, 40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고즈넉함이 그러했다. 옛 공간을 그대로 남겨놓은 부분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은퇴하기 전까지도 여전히 연탄으로 난방을 떼고, 때 묻은 플라스틱 통에 차가운 물을 부어 냉장고로 사용하셨다. 한쪽 벽에는 세월을 증명하는 오랜 타일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또 할아버지는 체구가 작은 탓에 키가 큰 손님의 머리를 다듬기 위해서 10cm 높이의 나막신을 직접 만드셨다. 그 나막신과 미용 의자가 마음이발소에 그대로 남아있다. 



인테리어에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저 잘 보이기 위한 가구와 배치가 아니었다. 8평 남짓한 공간을 소개하는 데 들은 이야기만 해도 수십 개가 되는 듯했다. 모든 조명과 그릇, 선반마저도 존재의 이유와 이야기가 있었다. 벽시계는 2시 59분에 멈춰있다.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은 장만옥에게 시계를 가리키며 말한다. "내 시계를 1분만 같이 봐요." 벽시계의 초침이 2시 59분에서 3시로 넘어가는 순간. "1960년 4월 16일, 우린 1분동안 같이 있었어. 난 그 1분을 기억할거야." 라고 말한다. 선배님은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다.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고픈 마음을 담은 시계에는 배터리가 없다. 


또 직접 만드신 따뜻한 차를 내어주시며 나에게 어울리는 찻잔을 골라주셨다. 수빈은 맑고 곧은 여름같은 사람이라며 중국에서 사오신 하얀 도자기 찻잔을 보여주셨다. 차 한 잔에도 그녀의 마음이 있었다. 오래 쓰인 공간에는 사람이 남아있다. 선배님이 들려주신 할아버지와 둘만의 비밀 이야기도 있었다. 공사를 하는 도중에, 할아버지가 몰래 간직해 온 마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에 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비밀이라고 하셨으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공간에서 비밀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나만 알아야 했던 비밀은 시간이 흘러 의연한 비밀이 되기 마련이다. 공간을 탐험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있어 보임직한 인테리어를 위해 '오늘의 집'을 들여다보던 나에게, 공간을 가꾸는 것에 대한 시각을 바꿔주는 날이었다. 


나만의 공간이 1평이라도 있다면, 그곳에서 마음껏 나의 비밀을 만들어보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나를 위로하는 것들로 선택하고 다듬고 배치하는 것이다. 바라만 보아도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나는 한 사람의 공간이 곧 그를 설명한다고 믿는다. 오늘의 나는 공간을 어떻게 채워가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본다. 하나를 골라도 가성비보다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했다. 나만이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물건들을 만들기로 했다. 알려주지 않으면 절대 모를 비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지금 당신의 공간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지 궁금하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05130427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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