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난 나의 우울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의 선택인 글쓰기'를 시작하겠다고 멋지게 말하며 과감히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이튿날 글에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정성스러운(?) 댓글이 하나 달렸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로 시작하는 그 글에는 내 글에 양념이나 소스가 너무 많이 첨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 더 담백하게 한 가지 조미료만으로 맛을 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꾸역꾸역 앉아 발행까지 해냈지만 이곳 저것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계속 보여 편치 않았던 내 마음이 들킨 듯했다. 공개적으로 보이는 곳에 글을 올렸으니 누군가가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댓글의 기능이 있으니 본인의 생각을 적어 놓는 것 또한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몰려오는 부끄러움을 숨길 수는 없었다. 습관이 되어버린 미사여구를 써 대는 한심한 나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자 나는 왜 되지도 않는 글쓰기를 하겠다고 이러고 있나 라는 생각까지 밀려들었다. 한번 빠지면 답도 없는 자괴감의 늪이 딱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리곤 마음속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달콤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예전 어느 날 미국 시골의 한 한인 교회에서 한 30대의 젊은 집사님이 대표 기도를 올리며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그 기도 구문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아 있다.
자기 비난의 늪은 생각보다 깊으며 강력하다. 일단 빠지고 나면 '세상 한심한 나'는 어느새 이렇게 나를 만든 이 고된 세상에서 하루하루 버텨가는 '세상 애잔한 나'가 되는 것이다. 겸손한 성격의 나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공보다 나의 허물을 까놓고 보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는 나는 결국 모자란 내가 되고 어느새 나는 사람에 치이고 상황에 치이는 한껏 불쌍한 사람이 돼버린다.
이러한 바보스러움은 겸손인가? 오히려 이건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한 오만함이었다. 한껏 내려갔다 다시 튀어 올라올 수 있는 에너지가 다 동이 나 버렸을 때 나는 그냥 주저앉았다.
나는 자기 연민과 비하에 빠져 빛나는 나의 오후가 시작됨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80년을 산다고 할 때 나의 24시는 현재 2시쯤에 있으며 100세까지 산다고 하면 아직 이제 막 오전 12시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하루의 햇살이 가장 강하게 쏟아지는 이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낮에 뙤약볕에 땀도 나도 숨이 차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힘이 들면 가쁜 숨 좀 잠깐 골아주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한숨 돌리면 되는 일이었다. 나의 몸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현대의 기술은 빠른 시간에 나를 어디든 데려다준다.
KTX를 타면 광명까진 삼십 분, 서울역까지는 한 시간이 걸린다.
아직은 젊은 나의 날들.
얼마 전 이효리가 한 유튜브에서 보컬 학원을 등록했다고 이야기했다. 보컬도 연습하고 작곡도 연습하면 10년 뒤에는 노래 잘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