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무례함에 보내는 정신승리법
나는 2003년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대단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시작하게 된 일에 꽤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공부방, 교습소, 학원, 과외 등을 전전하다 지금은 지방 한 도시에서 개인 교습을 주로 하고 있다. 20여 년 세월의 노하우 덕에 나는 학년이나 레벨을 따지지 않고 어린이에서 성인, 그리고 입시생에서 유학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돈 되는 수업이라면 그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고등 학생과 성인 위주의 수업이 대부분인데 지난주에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엄마와 상담을 왔다. 아이는 게임을 할 수 있는 토요일 시간을 뺏긴 탓에 무척 초조해 보였고, 이 아이 위로 누나 셋을 키워내셨다는 엄마는 막둥이의 초조함 섞인 투정에도 사랑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셨다. 어떤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아이를 붙잡고 더 물어볼 말도 없었던 나는 얼른 상담을 마치며 다음 주인 바로 오늘부터 수업을 시작하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고 아이가 오기 전날인 어제저녁 나는 그 어머니께 확인 카톡을 드렸다. 그리고 밤 12시가 가까워진 무렵, 당신은 직장에 있고 아이가 자전거 타고 가는 연습을 안 했으니 첫날은 걸으면 20분이 넘는 우리 동네까지 택시를 태워 보내겠다고 답장이 왔다.
그리고 나는 오늘 비를 맞으며 나름 바쁜 일정들을 서둘러 끝내고 아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이런저런 보드 게임과 나름의 간식을 준비해 놓았다. 영어 공부가 너무 싫다던 아이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맞춰 볼 심산이었다.
이렇게 준비완료.
오기로 한 2시 30분이 넘어도 아이가 소식이 없다. 전화를 해도 전화기가 꺼져 있고 어머니께 문자로 카톡으로 연락해도 답이 없다. 창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아마 학교수업이 끝나고 오늘 영어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조금 귀찮은 마음에 전화기를 살짝 꺼 놓고 있는 건지도. 사실 어떤 이유이든 비가 이렇게나 오는데 옆 동네까지 공부하러 오기 싫은 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두세 번쯤 연락을 한 뒤에 마음은 이미 그 학생이 오지 않을 거라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기다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1시간 10분이 훌쩍 지나 학생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 선생님. 저도 계속 회의가 있어서 아이랑 지금 연락이 닿았어요. 지금 보낼게요. "
순산 너무나 당황한 나는 "제가 오늘 4시부터 10시까지 다른 수업이 있어서요."라는 대답을 3초의 머뭇거림 뒤에나 할 수 있었다. " 아, 4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이 있으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토요일에 보낼게요."라는 쿨한 목소리가 함께 전화가 끊어졌고, 나는 갑자기 기분이 다운됨을 느꼈다. 아이가 첫날부터 연락도 없이 안 온 사실에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찾아냈다.!
짧을 대화 내내 서두에 왔으면 좋았을 "죄송합니다"라는 한 마디가 못내 아쉬웠나 보다. 그 아이의 수업을 위해 교재를 준비하고 그 아이를 위해 기다렸던 시간은 오늘 되도록 끝내고 싶었던 집 밖의 다른 용무를 포기한 시간이었다. 나의 기회비용을 날려버렸으니 미안하다는 작은 사과쯤은 되돌아와도 괜찮지 않았을까?
물론, 바쁜 직장에서 학원 가기 싫다는 어린 아들을 어르고 달래며 바쁜 회사 일정도 처리해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 직장이 집일 뿐 나 또한 그런 일상을 매일 되풀이하고 있으니, 그 고단하고 정신없는 하루에 대해 애잔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단지 죄송하다는 그 뻔한 인사 속에 담긴 작은 배려를 받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이 세상 수많은 사연과 사건 속에 이건 아주 티끌 마치 사소한 무례함일 뿐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작은 무례함에 기분을 상한 나는 그까지것이라 쿨하게 넘겨버리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꺼이 나의 소심함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소심하나 스쳐지나 수 있는 작은 일에 시간과 감정을 쏟고 싶진 않으므로, 나는 빠르게 정신승리 회로를 가동한다.
4시부터 수업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4시에 오는 초등학교 6학년 친구는 오늘 학교 학예회 오디션 연습으로 빠지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만약, 아까의 전화 통화가 다음과 같았다면 뒤의 이야기도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아유, 선생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아이랑 연락을 못했네요. 혹시 괜찮으시면 지금이라도 보내도 괜찮을까요?"
나는 기꺼이 그 아이를 위해 비 오는 날 어울리는 따스한 간식을 새로 준비했을 것이다. 영어공부가 싫다던 아이를 위해 더욱 고민하며 최대한 아이의 흥미를 끌어볼 수 있는 게임을 한번 더 골라봤을 것이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아이의 등을 따뜻하게 도닥여 줬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사소한 무례함으로 영어공부가 싫다던 아이의 상황에 도움이 됐을지도 모를 작은 동기 하나를 놓쳐버린 것이다. 사소한 무례함이니 사소한 복수(?)로 대신한다.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무례함을 경험한다. 그리도 또 모르는 새에 나 또한 그런 무례함과 상처를 이리저리 뿌리고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내가 저지른 배려 없는 그 말투나 작은 행동 하나에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나부터.
#글루틴